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2019년 ‘쩐의 전쟁’에 돌입했다. 수백억 원에 인수되는 영화ㆍ드라마 제작사들이 잇달았다. 매니지먼트 회사와 K팝 기획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3~4년 사이 업계에 ‘돈벼락’ 맞은 사람이 급증했다.
‘돈바람’은 공룡 IT회사 카카오로부터 불기 시작했다. 카카오가 자회사 카카오M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쩐의 전쟁’이 벌어졌다. 카카오는 영화사 사나이픽쳐스와 월광, 영화사 집 등을 인수했다. 매니지먼트 회사 BH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숲 등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들 회사의 시너지 도모를 위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경쟁사들이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의 관계사 제이콘텐트리(현 콘텐트리중앙)가 참전해 비에이엔터테인먼트와 퍼펙트스톰필름, 필름몬스터를 인수했다. 업계 최고 강자를 자부하는 CJ ENM도 뛰어들었다. 모호필름과 블라스튜디오, 엠메이커스, 밀리언볼트 등의 지분을 사들여 자회사 CJ ENM 스튜디오스 산하에 두게 됐다. 코로나19로 업계가 큰 변동을 맞았음에도 ‘쩐의 전쟁’은 지속됐다. 최근 카카오와 하이브엔터테인먼트가 K팝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두고 벌인 전투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재편할 만한, 전쟁의 승부처였다고 본다.
SM 인수 경쟁에서 주목할 점은 CJ ENM의 관망이다. SM 매각설은 몇 년 전부터 나왔다. 카카오와 더불어 CJ ENM이 유력 인수자로 지목되고는 했다. CJ ENM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에서 강세를 보이며 ‘대중문화 제국’을 일궈 왔다. 음악 사업은 상대적인 약점으로 꼽혔다. SM 인수는 CJ ENM을 절대강자로 만들어줄 만했다. 업계에서는 ‘실탄’ 부족을 이유로 꼽는다. CJ ENM이 미국 엔데버콘텐츠(피프스시즌으로 변경) 등 여러 제작사를 인수하고, 자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 투자하면서 돈줄이 말랐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는 SM을 발판 삼아 CJ ENM에 맞설 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M과 자회사의 협업을 통해 영화·드라마 제작이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가 올해 기획하거나 제작할 영화와 드라마는 30편가량(지난해는 20여 편)이다. 드라마 ‘경성크리처’와 ‘도적: 칼의 소리’, 영화 ‘승부’는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스’와 ‘최악의 악’은 디즈니플러스에서 각각 공개된다.
약점은 있다. 플랫폼이다. 카카오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콘텐츠 생산에 집중돼 있다. 경쟁 회사들에 비해 유통망 구축이 안 돼 있다. 카카오톡과 연계된 카카오TV를 활용하려 하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다. CJ ENM은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 CGV를 관계사로 두고 있다. 티빙을 비롯해 케이블 채널 tvN과 OCN, 엠넷, 투니버스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콘텐트리중앙은 멀티플렉스 체인 메가박스, JTBC의 관계사다. 콘텐츠는 플랫폼 경쟁력을, 플랫폼은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한다.
SM이라는 ‘성배’에 독이 들었는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카카오가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같은 우수 콘텐츠를 만들며 세계 대중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의 시너지 극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시너지의 핵심 축은 플랫폼이다. 카카오는 큰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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