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봄비가 내린 5일 오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를 찾은 상춘객들이 벚꽃을 구경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이날부터 오는 9일까지 교내 벚꽃 명소를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벚꽃 개화에 맞춰 일반인에게 부대를 개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시스
가뭄을 해갈하는 봄비가 내린다. 보슬보슬 곱게 적시는 밤비를 바라보며 돌아가신 작가 최인호(1945~2013) 선생이 가사를 쓴 노래 ‘어제 내린 비’를 흥얼거렸다. 작가 황석영은 자신이 편저한 ‘한국 명단편 101’에서 최인호를 “당대의 재주꾼이었다”면서도, 고인의 글에 대해선 “이국적 정서가 짙은 대중적 감수성을 풍겼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고인을 존경하고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로서는 그런 평가가 왠지 박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 나는 우리 문학에서 고인만큼 간결하고 명료하며, 환기력이 강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를 아직도 선뜻 꼽지 못한다. 황석영의 문학은 사회의식과 문장의 아름다움이 격조 높게 조화를 이뤘지만, 당대(1970~80년)에 받은 독자들의 사랑은 결코 최인호에 미치지 못했다고 본다. 그건 고인이 가졌던 감수성이 ‘대중적’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사고와 감성을 어떤 작가보다도 예리하게 포착해 연주해 낼 수 있는 천재 덕분이었을 것이다.
▦ 노래 ‘어제 내린 비’의 가사는 여전히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어제는 비가 내렸네/키 작은 나뭇잎새로/맑은 이슬 떨어지는데/비가 내렸네/우산 쓰면 내리는 비는/몸 하나야 가리겠지만/사랑의 빗물은/가릴 수 없네’. 많은 문학과 노래에서 비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정서적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뭄을 해갈하는 고마운 단비이기도 하고 자칫 풍수해를 일으키는 위협이기도 하다.
▦ 이번 비가 내리기 전인 지난 2일까지 전국 강수량은 최근 30년 평균의 66.1%에 그쳐 봄 가뭄이 심했다. 광주ㆍ전남 지역은 가뭄이 1년 넘게 이어졌고, 완도와 진도 등 도서지역에선 ‘6일 단수 2일 급수’ 같은 제한급수가 시행됐을 정도다. 생활용수 부족도 문제지만, 영농철을 앞둔 농민들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한식(6일) 전, 선영에 제초ㆍ방충제를 분무하고 과립형 잔디 비료 등을 뿌려 둔 후손들도 간절히 비를 기다렸을 터이다. 이제 목련이 지고 녹음은 짙어지리라. 고운 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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