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 곳곳엔 화마가 할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 2일 발생한 산불이 완전히 진화되기까지 약 25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불길에 휩싸인 채 숯덩이로 변해간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까맣게 타버린 숲 속에서 살아남은 나무들도 있었다. 요행히 불길이 피해 간 덕분에 멀쩡한 나무도 있었고, 표면만 살짝 그을려 충분히 회복이 가능해 보이는 개체도 많았다.
특히, 거센 불길에 나무의 한쪽 면이 타버리는 동안 반대편은 불길이 전혀 닿지 않아 멀쩡한 경우도 여러 개체 관측됐다. 마치 자로 잰 듯 반은 까맣고 반은 정상인 나무들, 거센 불길을 말없이 버텨낸 나무들은 과연 살 수 있을까.
전문가에 따르면, 나무의 일부만 탔더라도 그 정도가 심한 경우엔 자연 회복이 쉽지 않다. 반대로, 불에 그을렸다고 해서 모든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입은 산불 피해는 그을음의 정도와 나무 직경 등을 기준으로 '지표화'와 '수관화'로 분류된다. 각 개체마다 얼마나 지독한 불길을 겪었는지에 따라 나무의 '생'과 '사'를 가리는 선고가 내려지는 것이다.
불길이 지표면을 지나가기만 한 지표화의 경우 나무는 별도의 복원작업이 없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무의 상층부까지 태우는 수관화를 경험한 나무라면 자연복원이든 인공조림이든 복원 작업의 대상이 된다. 다음 주로 예정된 경찰 및 소방본부, 산림청, 산림과학원 등의 현장 합동감식 이후 숲 복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인왕산 나무들의 상태가 정식으로 진단될 것으로 보인다.
나무의 절반은 타고 절반은 멀쩡한 경우는 전문가들도 흔치 않은 사례로 꼽았다. 이영근 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실장은 "앞(탄 쪽)만 보면 수관화가 진행돼 복원 작업이 필요해 보이는데, 뒷면을 보면 또 아닌 거 같아서 애매하다"며, "개체별 상태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왕산과 숲, 나무의 회복을 그 누구보다 바라는 것은 매일 같이 이곳을 찾는 주민들이다. 잔불 정리 이후 비가 한 차례 오면서 입산 통제가 해제된 지난 5일 시민들은 다시 인왕산을 올랐다. 산책로를 따라 걷던 시민들은 그을린 나무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안쓰럽게 바라보곤 했다. 인근 마을 주민 윤창호(78)씨는 "여기 살면서 30~40년간 늘 봐 오던 나무들이 타니 마음이 좋지 않다"며 "세월이 조금 걸려도 괜찮으니 최대한 많은 나무들이 제 목숨을 지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 산림관리팀에 의하면, 다음 주 예정된 소방당국·경찰·산림청·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의 합동 정밀 감식으로 피해 면적, 부지 소유자 조사 결과 등이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산림 전문 연구 기관이 개별 피해 나무들을 관찰해 수관화, 지표화 등을 구분한 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복원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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