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밀문건 유출에 따른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에 대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대응이 논란을 낳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26일 국빈 방문 일정 협의차 11일(현지시간) 방미한 김 차장은 현지 공항에서 취재진이 유출 문건에 나오는 안보실 관계자 대화 내용의 진위를 묻자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어 "같은 주제로 물어보면 떠나겠다"며 관련 질문을 가로막았다. 이후 취재진에 유감을 간접 표명했다지만, 그가 보인 고압적 말투와 태도는 국민 관심사에 성실히 응해야 할 공직자의 자세와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내놓은 설명도 의구심만 키웠다. 전날 출국길엔 "상당수 정보가 위조됐다는 데에 한미의 평가가 일치한다"며 의혹을 일축하더니, 이날은 "미국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도·감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뭇 다른 답변을 했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용산청사 내부 대화의 도·감청은 불가능하다"는 해명을 보태면서 '청사 바깥에서 도청이 이뤄졌다' '대화 내용을 유출한 정보원이 있다' 등 의혹만 양산됐다.
정작 미국은 국방부를 비롯한 관계당국이 일제히 기밀 유출 사실을 인정했다. 수습 과정에 한미 간 손발이 안 맞는 모양새다. 폴란드 총리는 어제 미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포탄 제공을 두고 한국과 여러 달 논의해 왔고 이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서 한국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건 속 안보실 관계자들 대화와 궤를 같이하는 내용이다.
김성한 전 안보실장 사퇴 이후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주도적 역할을 맡은 김 차장 입장에선 도·감청 의혹이란 돌발 변수가 회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만 강조하며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태도를 보여선 곤란하다. 국가 간 정보전이 동맹도 봐주지 않을 만큼 치열하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나, 그것이 노출되면 해당국에 경위를 묻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게 주권국으로서 합당하다. 김 차장이 이번 방미 기간에 이행해야 할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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