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수술한 환자들 회진을 돌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현금인출기 절반만 한 크기의 물체가 혼자 움직이면서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네모난 금속 덩어리는 나를 장애물로 인식했는지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궤도를 조금 수정한 후, 놀라 멈춰 선 내 옆으로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유히 지나갔다. 말로만 듣던 물류 이송용 자율주행로봇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슬금슬금 뒤를 따라가 보니, 모처로 무거운 짐을 운반해 주고 지하 하역장으로 혼자 이동하는 길인 듯했다. 투자의 고수들은 기발한 신제품이 나와서 잘 팔리면, 그 제품을 사는 소비 행위 대신에 그 회사의 주식을 산다고 했던가? 나는 미래를 보고 온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이 된 것 같은 흥분으로 모빌리티, 자율주행 로봇 관련 종목을 검색해 봤다.
테슬라라는 미국 전기차 회사는 아직은 멀다고 느끼고 있던 전기차의 시대를 열어젖힌 혁신적인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이사 일론 머스크는 좌충우돌의 대명사로 거의 모든 지구인이 그를 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가 아니고 로봇 회사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자동차가 이미 통신 기술로 조종하는 바퀴 달린 스마트 로봇에 더 가까운 형태라고 말한 바 있으며,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 개발에도 진심이라고 한다. 내가 서울에 오갈 때 애용하는 신분당선 열차에는 놀랍게도 승무원이 없다. 알고 보면 전기로 움직이는 큰 열차 로봇을 타고 있었다.
SF 영화에서 보던 일이 빠르게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병원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로봇은 어떤 형태가 있을까? 우선 환자 이송 로봇이 떠오른다. 지금은 환자가 검사실이나 수술실에 갈 때, 바퀴 달린 침대에 일단 올라타고 눕는다. 그 환자에게 배정된 이송원은 침대를 사람의 힘으로 밀고 목적지까지 함께 이동한다. 바퀴 달린 침대에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한다면 입력된 목적지까지 정확하고 안락한 이동이 가능해진다. 인간형 로봇 개발이 진일보한다면 외로운 환자 옆을 지켜주는 영리하고 힘이 센 간병 로봇도 상상해 볼 수 있다. 5인실 환자 침대 사이의 낮은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 보호자나 간병인들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극 희귀 인류가 되어가는 외과 의사 입장에서는 수술을 같이 해줄 수 있는 수술 보조 로봇 연구도 반갑다. 수술 잘하고 있다고 말동무도 해주고, 분위기에 맞는 음악도 틀어주면 좋겠다. 로봇의 넓은 가슴에는 환자의 수술 전 검사 영상을 실시간으로 띄워줄 수 있는 고해상도 화면도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발전해도 반갑지 않은 것은 로봇이 선을 넘어 집도의를 꿈꾸는 것이다. 누구나 생각한다. 내 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고.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의 패턴화된 행동을 쉽게 학습하고, 로봇은 표준화된 노동을 오차 없이 재현할 수 있다. 그래서 수술은 패턴이 들키지 않게 환자마다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봤다.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신뢰받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드문 직업군에 외과 의사도 포함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옛날에는 저 일을 사람이 했지'라고 생각될 일과 '감히 어딜 기계가 넘봐!'라고 손꼽히는 귀한 직업이 무엇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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