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프랭클린과 왓슨-크릭
제임스 왓슨(1928~)과 프랜시스 크릭(1916~2004)은 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과학자라는 명성 못지않게 연구 윤리 스캔들로도 널리 기억된다. 경쟁자였던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의 연구 데이터를 도용하고 특히 박사과정 연구원 레이 고슬링의 X선 사진(일명 ‘Photo 51’)으로 DNA 구조 모델의 결정적 단서를 얻고도 논문에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점 때문이다.
그 논란은 왓슨이 1968년 자전 에세이 ‘이중 나선’에서 58년 작고한 프랭클린의 외모와 성격 등을 비열하게 묘사하면서 증폭됐고, 최근까지도 인종-여성-외모 차별 망언을 일삼으면서 심증적 확신을 갖게 했다.
하지만 최근 과학사가들은 연구 스캔들 비난이 과도했다고 평가하는 모양이다. 문제의 X선 사진은 킹스연구소 부소장이던 윌킨스의 연구원 고슬링이 찍은 것으로, 윌킨스가 왓슨에게 그 사진을 보여준 1953년 1월 말 무렵에는 프랭클린이 연구를 중단하고 연구소를 떠나려던 시기였다는 것. DNA 분자 구조 등에 대한 프랭클린의 연구 데이터 역시 부정한 방법이 아니라 여러 연구자의 손을 거쳐 공개적으로 왓슨 등에게 전해졌다. 왓슨 등이 프랭클린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은 도의적인 흠일 수 있지만 윤리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 그들은 그 데이터로 DNA 구조뿐 아니라 화학결합 각도 등 정밀한 형태를 수학적으로 규명해냈다.
당시 과학계는 여성 과학자에게 대체로 모질었고 프랭클린의 성격은 알려진 바 사뭇 전투적이어서 왓슨과 크릭, 윌킨스 등과 썩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왓슨 등은 빚을 진 동료에 대한 존중심이 현저히 부족했지만, 동료의 연구를 ‘도용’하진 않았다. 1953년 4월 25일 자 ‘네이처’에는 왓슨 등의 논문과 함께 윌킨스의 논문과 프랭클린-고슬링의 논문이 함께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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