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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선을 40여 일 앞둔 지난해 1월 더불어민주당 83학번 재선 의원 김종민은 “정치를 바꾸지 못할 것 같으면 그만두자”며 86그룹 용퇴론을 점화했다. 당대표이던 81학번 송영길은 긴급 회견을 자청해 “정치교체를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얼마 뒤 김종민은 “사람이 아닌 제도의 용퇴를 말한 것”이라고 발을 뺐고, 송영길은 “불출마 선언은 지방선거가 아니라 총선이었을 뿐”이라며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86그룹은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60년대생, 좁게는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민주당의 ‘전대협 세대’를 칭한다. 민주당 86그룹이 여의도에 본격 등장한 건 2000년 총선부터다. 임종석(한양대 총학생회장) 송영길(연세대 총학생회장) 이인영(고려대 총학생회장) 등 전대협 출신이 1999년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에 대거 등용되며 여의도 정치 주류로 세력화했다. 30대 86세대를 일컫는 386에서 시작해 486, 586을 지나 어느덧 686 초입에 들어섰다.
□민주당에서는 조국 사태처럼 큰 위기가 찾아오거나 선거 때가 되면 86그룹 용퇴론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다. 송영길, 김종민이 말을 뒤집었듯 제대로 실현된 적은 없다. 청년 정치인들의 외침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2015년 30대의 혁신위원 이동학이 당내 86그룹에게 험지 출마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공동비대위원장이던 20대 박지현이 86세대의 아름다운 퇴장을 요구하다 당 지도부와 충돌한 뒤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꼬리를 내렸다.
□송영길이 ‘돈 봉투 사건’ 의혹의 중심에 서면서 다시 86그룹 용퇴론이 스멀스멀 나온다. 30대 초선 오영환이 얼마 전 “책임져야 할 이가 책임지지 않고 기득권에만 연연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개혁돼야 한다”는 쓴소리와 함께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불을 지폈다. 하지만 86그룹에 속한 정책위의장 김민석은 “물욕이 적은 사람임은 보증한다”며 송영길을 단단히 감쌌다. 86그룹의 결단 요구는 점점 커지는데, 이번에도 그들의 굳건한 아성에 흠집을 내기가 만만찮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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