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동씨의 분신 '배후설' 제기, 모두 근거 희박
비극적 사건에 모욕 주며 비인간성만 두드러져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분신’은 자살 방식이라기보다 저항 방식이다. 극단적 형태의 ‘프로파간다’이며, 종종 역사를 바꾼다. 파급력을 걱정하는 쪽에서는 분신의 순수성을 공격해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 지난 노동절(5월 1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양회동씨가 정부의 ‘건폭몰이’에 저항해 분신한 후, 보수매체에서 ‘자살방조’ ‘유서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방조 혐의자 없다”고 했고, 필적 분석에서도 본인 필적이 맞는 것으로 나왔다.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신은 1963년 베트남 전쟁 중 사이공에서 있었던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다. 불교를 탄압하던 독재자 응오딘지엠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었다. 화염에 휩싸인 채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정좌한 모습은 미국 언론의 보도로 전파됐다. 남베트남 정권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을 확산시켜 정책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 1969년 소련의 침략에 저항한 얀 팔라흐의 분신은 체코 민주화의 밀알이 됐고, 2010년 튀니지의 과일 장수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은 ‘튀니지 혁명’과 ‘아랍의 봄’에 불을 댕겼다. 한국에선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노동문제를 사회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 모든 분신이 변화를 이끌거나 기억되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소 1,6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승려들이 분신을 했다. 티베트와 인도,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분신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분신의 파급력은 사회적 분노가 얼마나 응축돼 있느냐, 언론보도 등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느냐와 연결된다.
□ 틱꽝득 스님은 다른 승려가 휘발유를 뿌렸고, 손수 성냥을 켰다. 함께 시위에 참여한 승려들과 군중, 기자들이 지켜봤다. 응오딘지엠 대통령의 제수는 “불교 지도자들이 뭘 했나. 승려 중 한 명을 바비큐로 만든 것뿐”이라 모욕하고 일종의 배후설을 제기했다. 양회동씨의 분신 이후 배후설을 제기한 매체와 이에 동조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유족 등에게 고소당했다. 분신의 비극성으로 볼 때, 섣부른 배후 찾기는 사회의 비인간성만을 두드러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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