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눈물이 가득 차더니 결국 뺨을 타고 흘렀다. 20대 배우는 현실이 믿기지 않은 듯해 보였다. “얼떨떨해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피가 안 통하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프랑스 칸에서 만난 배우 홍사빈은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는 듯했다. 그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 선정된 영화 ‘화란’으로 칸을 찾았다.
홍사빈만 아니다. ‘화란’의 김창훈 감독은 초청 소식을 듣고 “울었다”고 말했다. “항상 꿈만 꾸던 칸에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으로 비평가주간을 찾은 유재선 감독은 어떤가. 그는 “평행우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감격해했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상영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김태곤 감독은 “아내가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도대체 칸영화제가 무엇이길래. 그들을 흥분시키고 눈물까지 부르는 걸까.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안다. 세계 최고 영화제에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게 됐으니 당연히 기쁨의 눈물을 흘릴 만하다.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다했다”는 김창훈 감독이나 “가진 게 없어 결혼을 주저했다”는 유재선 감독이나 “몇 년간 실업자 신세였다”는 김태곤 감독이나 고난이 빚어낸 기쁨이 남달랐을 테다. 칸에서 여러 영화인을 만나며 칸영화제의 위세를 새삼 실감했다. 우리는 칸영화제 같은 영화제를 가질 수 없을까.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으니 딱히 부러워할 필요 없는 것일까.
부산영화제는 흔들리고 있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이용관 이사장이 책임을 지겠다며 조기 퇴진을 공언했다. 지난 9일 이사회와 임시총회를 거쳐 조종국 운영위원장을 위촉한 일이 화근이 됐다. 조 위원장 위촉으로 허 위원장 업무는 상영 영화 선정과 행사 기획 등으로 대폭 줄었다. 한 지붕 아래 집주인이 두 명 있는 격이 됐으니 갈등은 예고된 것이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허 위원장 복귀와 조 위원장 퇴진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시계를 임시총회 이전으로 돌린다고 부산영화제가 되살아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산영화제의 위기는 구조적이다. 몇 년 전부터 부산영화제를 바라보는 해외 영화인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부산영화제는 이미 성장판이 닫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시아 대표 영화제라는 수식을 얻었으나 지난 몇 년간 정체상태다.
부산영화제는 1996년 첫발을 디뎠다. 국내에도 영화제를 만들어보자는 영화인들의 도전과 도시를 세계로 알리고 싶은 부산시의 지원이 만나 만들어졌다. 영화제는 예상보다 성황을 이뤘다. 지원금은 매년 늘었고, 부산 해운대구에 영화제를 위한 부산 영화의전당까지 건설됐다. 하지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영화제에도 적용된다. 부산시는 27년 전의 만족감을 지난해에도 과연 느꼈을까. 코로나19로 영화산업이 급변하는 시기, 영화제만 변화의 급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일까. ‘1996년 체제’는 이제 종언을 고한 것 아닐까.
바뀌어야 한다. 사람 몇몇이 들고나는 정도로는 부산영화제가 중흥을 도모할 수 없다. 좀 더 젊은 세대가 이사장과 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영화제를 만들어야 한다. 역사가 영화제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1947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75번 막을 올렸던 영국 에든버러국제영화제는 올해 개최가 불투명하다. 부산영화제라고 예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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