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세입자가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 피해와 관련해 부동산중개업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물은 1심 법원 판결이 나왔다. 통상 세입자가 떼인 돈의 20~30%만 인정하던 중개업자 배상 비율을 60%로 대폭 높인 것이다. 전국적인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거래 사건에 중개업자들이 대거 연루된 가운데 이들의 책임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부합한다.
피해자를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문제의 중개업자는 보증금 3,500만 원짜리 원룸 전세 계약을 중개하면서 모든 원룸의 선순위 보증금(기존 세입자 보증금)이 총 1억2,000만 원으로 건물·토지 시세 10억 원에 한참 못 미친다고 피해자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선순위 보증금 합계액은 그보다 4배가량 많았고, 계약 체결 후 1년도 안 돼 입주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피해자는 보증금의 절반만 변제받을 수 있었다.
중개업자는 법정에서 임대인이 구체적 정보를 주지 않았고 선순위 보증금 정보 열람 권한은 임차인에게 있다며 책임을 전가했다고 한다. 설령 책임이 있더라도 통상 수준인 30%로 제한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피해자 측은 중개인이 임대인의 정보 제공 거부 사실을 서면 고지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사실이라면 집주인에게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잘못된 선순위 보증금 액수를 알려줘 피해자가 보증금이 안전하다고 오판하게 만든 셈이다.
판결 이유는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법원의 무거운 배상 판결은 부동산중개업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상식적 기대나 법감정과 다르지 않다. 주택가격 하락 속 역전세 폭증 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세입자의 사기 피해 구제에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중개업계의 자성과 분발로 이어지길 바란다. 가구의 핵심 자산인 주택 거래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만큼 그에 걸맞은 직업윤리와 전문성은 필수적이다. 때론 전 재산이 걸린 거래임에도 시민 대다수가 법률·시장 정보 부족으로 중개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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