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를 메고 현장을 누비던 시절 사진은 어려웠다. 급박한 상황에서 셔터 속도와 조리개, 초점까지 ‘완전 수동’으로 맞춰야 했고, 셔터 위에 손가락을 얹고서도 눈앞에 보이는 장면이 과연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누르지 못했다. 섣불리 필름을 낭비했다가 결정적 순간에 ‘물’을 먹을 수 있으니. 다 찍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지난했던가.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무수한 찰나들을 흘려보내던 시절의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사진이 쉬워졌다. 손가락으로 셔터 누르는 일 외에 사진을 찍는 모든 과정을 기계가 알아서 해준다. 저장 용량에 따라 수백, 수천 장까지 누르는 족족 찍히고 빛의 속도로 저장된다. 다만, 사진이 만만해질수록 필요 이상으로 많이 찍게 되는 건 문제다. 사진기자들조차 마감시간이면 자신이 찍어댄 '잉여 사진' 더미에 묻혀 허우적댄다. 쉽게 찍고 쉽게 버리는 시대, 사진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만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얼마 전 대통령실 공식 홈페이지를 살펴보다 그 의미나 의도가 불분명한 잉여 사진이 넘친다는 인상을 받았다. 반면 단 한 장이라도 심금을 울릴 만한 장면은 찾기 어려웠다. 특히, 김건희 여사 사진이 그렇다. 대통령실 홈피는 ‘사진뉴스’ 코너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 여사의 행보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 사진이 일정당 3~5장 내외인 데 비해 김 여사 사진은 보통 15~20장씩, 많게는 30장 넘게 올라오기도 한다.
사진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면 개수의 많고 적고가 무슨 문제이겠나. 그런데 단순 행사 사진을 여러 장 공개하다 보니, 비슷비슷한 장면이 겹치고 또 겹친다. 한자리에서 연속 촬영한 사진, 참석자들 사이에서 김 여사만 클로즈업한 ‘독사진’도 다수다. 특별한 메시지가 읽히지 않는 인물 사진의 중복과 나열은 불필요한 논란도 불렀다. 지난 3월 말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을 방문한 김 여사의 사진 22장 중 김 여사 혼자 앉아 있는 장면을 다각도로 촬영한 독사진이나 의도를 알 수 없는 해 질 녘 이미지 사진이 여러 장 포함돼 있었다. 야권에선 당장 ‘화보 찍냐’는 지적이 나왔다.
전속 사진사가 촬영하는 대통령 및 가족의 공식 또는 비공식 일정들은 그 자체로 역사적 기록물이 될 수 있다. 오바마의 사진처럼 대통령의 소탈한 면모, 인간적 고뇌를 담아낸 사진이 기록의 의미를 넘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촬영부터 사진을 선택하는 모든 단계에서 신중해야 하고 선택한 사진을 국민에게 잘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아쉽게도 김 여사가 등장한 사진을 보면, ‘잘 나온’ 사진에 대한 대통령실의 판단 기준이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건 아닌지, 많이 보여주는 걸 잘 보여주는 거라 착각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국민은 화보 주인공 같은 세련된 이미지보다 감동과 위로를 주는 인간으로서의 대통령과 영부인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 장면들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내면적인 부분까지 카메라의 접근을 허락할 때 자연스럽게 포착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훗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전속 사진사 피트 수자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기록하고 있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