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는 작년 5월 홍해 요트 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홍해를 발견하다’라는 글과 함께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사우디 정부와의 최대 320억 원짜리 비밀계약을 공개하며 “메시는 이 사진의 대가로 200만 달러(약 25억 원)를 받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명 스포츠 선수의 명성에 기댄 ‘스포츠 워싱’의 대표 사례라고 했다.
□국가 등이 스포츠를 이용해 나쁜 이미지를 세탁하는 행위가 ‘스포츠 워싱’이다. 나치 독일이 베를린 올림픽(1936년)으로 이미지 쇄신에 나서는 등 역사는 깊지만, 이 용어가 등장한 건 2015년 아제르바이잔의 유러피언게임 개최 때부터다. 최근 가장 공격적인 나라가 ‘오일 머니’를 등에 업은 사우디다. 언론인 살해, 반체제 인사 감금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을 덮기 위해서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명문구단 뉴캐슬을 사들이고, 미국프로골프(PGA)에 대항하는 LIV를 출범시켰다. 미 법무부가 일단 제동을 걸었지만 PGA와의 전격 합병까지 발표했다.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3S(Sports∙Screen∙Sex) 정책이 있었다. 국민들의 정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일종의 우민화 정책이었다. 프로야구(82년) 프로축구∙민속씨름(83년) 등 프로스포츠를 적극 육성했고 아시안게임(86년)과 서울올림픽(88년)을 유치했다. 검열 완화로 ‘애마부인’ 등 에로영화 범람의 물꼬를 텄고, 야간통행금지 폐지(82년)로 성 관련 산업도 급속히 커졌다. ‘스포츠 워싱’에 더해 ‘영화 워싱’, ‘성문화 워싱’까지 워싱 3종세트라 할 만하다.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강제노동 등 인권탄압 논란이 거센 티베트에서 열린 관광엑스포 행사까지 참석한 것을 두고 말들이 나왔다. 방중단장인 도종환 의원은 “인권탄압은 70년 전에 있었던 일” “국내에서 무슨 안 좋은 여론이 있는지 모르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유엔은 2월 약 100만 명의 티베트 아동이 민족 말살 정책 일환으로 가족과 떨어져 기숙학교에서 중국문화를 강제로 배운다고 밝혔다. 2009년 이후 티베트 독립을 호소하며 분신한 이들만 159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메시가 사우디 ‘스포츠 워싱’의 적극 조력자라면, 방중 민주당 의원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중국 ‘관광 워싱’의 간접 조력자가 된 건 아닌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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