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로 기억한다. 이른 오전 교실 스피커를 통해 난데없는 라디오 축구 중계가 흘러나왔다. 수업을 중단할 정도였으니 스포츠에 특별한 주관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신이 나서 고함을 지르며 응원을 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스포츠로 대한민국을 하나로 모은 그날 경기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U-20 월드컵 전신) 4강전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앞서 20년 전에 한국 축구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얼마 전 아르헨티나에서 끝난 U-20 월드컵 4강으로 40년 만에 또 한 번 ‘기적’을 일으킨 대표팀의 활약에 한국 축구는 들떠 있다. 손흥민(토트넘)과 김민재(나폴리)만 빠져도 휘청이는 A대표팀의 평가전을 보니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겨냥해 이 선수들을 고이 길러내야만 하는 당위성은 점점 커진다.
이번 대회에 나선 선수들은 이른바 ‘골짜기 세대’로 불렸다. 2003년과 2004년 출생 선수가 주축인 이번 대표팀에는 2017년 대회의 이승우(수원FC)나 2019년 대회 ‘골든 볼’ 주인공 이강인(마요르카)처럼 특출난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대회지만 대한축구협회는 홍보에 무심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거의 취재진을 파견하지 않을 정도로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고 시작 전까지 대회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알기도 어려웠다. 우승후보라던 프랑스를 꺾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고 16강, 8강을 넘어 진격하니 성인 월드컵에서나 볼 법한 광화문 길거리응원까지 등장했다.
김은중 감독은 대회를 마친 뒤에야 무관심에 소외됐던 선수들의 처지를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선수들이 잠재력이 있는데도 제대로 환영을 못 받고 인정받지 못해 가슴 아팠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그제서야 축구협회, 소속팀들은 앞다퉈 선수들의 기자회견을 주선하며 뒤늦은 스타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또 다른 유망주들의 선전엔 역시나 관심이 뜸하다. 지난 15일 개막한 U-17 아시안컵에서도 한국은 승승장구하며 8강에 진출했다. 아시아 대회이고 연령대별 비중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바로 직전 ‘무관심’으로 이슈가 됐던 김은중호를 봤기에 아쉬운 분위기다.
축구에서 황금세대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포르투갈, 벨기에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3위 이후 침체됐던 포르투갈 축구는 1989년과 1991년 청소년월드컵 2연패 주역들을 키워 2000년대 중반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섰다. 벨기에는 2014 브라질 월드컵부터 육성한 세대들을 앞세워 한때 FIFA 랭킹 2위까지 치솟았다.
한국 축구는 1983년 멕시코의 기적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황금세대의 등장을 기대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준우승이라는 새 역사를 썼던 4년 전 폴란드 대회 멤버 중에서도 지금 A대표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 이강인 정도밖에는 없다.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내고 나면 기적이라며 칭찬만 할 게 아니라 어린 선수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을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힐 황금세대로 만드는 길이다. 그건 오롯이 축구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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