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칼이 꽂혔다" 푸틴 비판에도 북진
국방부와의 파워게임 패배가 반란 계기 분석
러시아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은 짧았지만 강력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용병들은 러시아 남부에서 출발해 수도 모스크바 턱밑까지 약 1,000km 거리를 하루 만에 돌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리고진을 "반역자"로 규정하며 응징을 경고했지만 무력했다.
모스크바가 뚫리기 직전 프리고진은 돌연 철군을 선언한 뒤 러시아의 동맹국 벨라루스로 떠났다. 반란을 선포한 지 약 24시간 만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고, 전쟁은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국방부 못 참아" 진군한 프리고진... 러, '대테러 작전'
미국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방송 등을 종합하면, 프리고진과 러시아 군당국은 최근 몇 개월간 불화했다. "탄약 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된 불만으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의 실명으로 저격했다. 쇼이구 장관이 프리고진에 대한 통제권을 쥘 목적으로 "7월 1일까지 정식 용병 계약을 하라"고 한 것이 프리고진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후 구체적인 반란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국 정부는 21일부터 프리고진이 군사 행동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프리고진이 작전을 개시한 건 23일 오후 9시(모스크바 시간).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의 후방 캠프를 미사일로 공격해 자신의 병사들이 다쳤다면서 "러시아군 지도부의 '악'을 막겠다. 이것은 '정의의 행진'이다.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 선포했다.
약 2~3시간 뒤 러시아가 '대테러 작전'을 선언했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프리고진 체포 명령이 발동됐다.
10시간 만에 군 사령부 장악... 푸틴 '직접' 나섰다
프리고진은 24일 새벽 자신과 자신의 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러시아 본토에 진입했다고 알렸다. 이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지금은 오전 7시 30분이며, 우리는 (러시아 서남부) 로스토프주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군 사령부를 장악했다"고 밝혔다.
로스토프나도누는 모스크바로부터 약 1,100㎞ 거리에 있는 남부의 군 거점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100㎞ 떨어져 있다. 진격 개시 약 10시간 만에 국경을 넘고 군대까지 접수했다는 뜻이다. 프리고진은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군대를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안정적 주둔지를 마련한 프리고진은 '모스크바 북진'도 선포했다.
초기 진압에 실패한 푸틴 대통령은 오전 10시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고 알리는 한편, 프리고진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반역 가담자를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계속 북진해 모스크바 턱밑까지... "우리는 애국자다"
정오 즈음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푸틴은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반역자가 아니라 애국자다"며 "투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바그너는 계속 진군했다. 이른 오후 바그너그룹의 보로네즈 입성 소식이 전해졌다. 모스크바에서 약 5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로스토프나도누와 모스크바를 잇는 도시다. M4 고속도로를 타고 북진하면 모스크바다. 프리고진은 로스토프나도누에 남았다.
바그너군과 정규군의 교전도 일어났다. 보로네즈의 유류 저장고에 불이 났고 아파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프리고진은 "러시아군 헬기가 바그너그룹에 의해 격추됐다"고 했다. 이어 바그너가 모스크바에서 350㎞ 정도 떨어진 리페츠크에 접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온라인상에서는 "푸틴이 바그너를 피해 전용기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망갔다"는 의혹이 퍼지기도 했다. 크렘린궁은 "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며 피신설을 부인했다.
러시아가 대혼돈에 빠지자 12시간 이상 침묵하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첫 입장을 냈다. 그는 대국민 연설에서 "이번 반란은 기회"라고 반색했다.
반전이 벌어졌다. 프리고진은 오후 8시 30분쯤 철군을 선언했다. 그는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병력 이동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했다. 당시 모스크바를 불과 200㎞ 앞에 두고 있었다고 프리고진은 주장했다. 벨라루스 대통령실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중재했다"면서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고, 프리고진과 용병 모두 처벌을 면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오후 11시쯤 프리고진은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났다. 차량 뒷좌석에 탄 프리고진을 보며 러시아인들은 환호하며 함께 셀카를 찍었다. 그는 시민들을 향해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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