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학을 학과∙학부 단위로 운영하도록 한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그제 발표했다. 2025년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부터는 1학년 때 전과(轉科)를 할 수 있고, 아예 전공 없이 입학한 뒤 2~3학년에 전공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된다. 융합학과 등 ‘나만의 전공’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의 현행 방식 대신 대학들이 6년 통합 등 자율적인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1952년 제정된 낡은 칸막이가 71년 만에 제거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등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대학이 그동안 발 빠르게 대처를 못해온 게 사실이다. 인공지능(AI), 챗GPT, 메타버스 등이 생활 깊숙이 침투하면서 융복합 인재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는데 20세기의 낡은 학과 분류 틀은 새로운 학과 신설의 발목을 잡아왔다. 똑같은 학부와 학과들을 백화점식으로 갖춘 대학들에서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이번 칸막이 제거가 이런 낡은 틀을 깨부수는데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우려되는 문제도 만만치는 않다. 전공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취업이 잘되는 인기 실용학과로의 극심한 쏠림이 예상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대학 구조개혁을 유도하려면 졸업생의 취업률과 연봉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을 정도다. 당연히 순수과학이나 인문학 등 기초학문들은 고사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첨단 기술인재 양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기초학문의 뿌리 위에서 자라지 않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
아직 시행까지는 1년 넘는 시간이 있다. 교육부는 기초학문에 대한 재정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역부족일 것이다. 기초학문 학과 전공 학생에 대해서는 국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의 보다 적극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 어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총장 세미나에서 나온 “대학이 단순 인력양성소가 아닌 혁신 동반자가 돼야 한다”(정성택 전남대 총장)는 지적을 잘 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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