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건전재정을 해야 한다. 예산을 얼마나 많이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 혁신 마인드가 평가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린 강력한 지시로 각 부처가 5월 말 제출한 예산 요구안을 다시 작성하게 됐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 지출 규모를 줄인 새 예산 요구안을 3일까지 제출하라는 지침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이번 지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내년에도 2% 남짓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법인세 등 세수 증가 전망이 어두워 40조 원 넘게 세수가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감세와 국채 발행을 자제하면서도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년 지출 증가율을 3%대로 낮춘다면 이명박 정부 때인 2016년(2.9%)과 2017년(3.6%)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하게 된다.
정부는 국방 및 법 집행, 약자 보호, 미래 성장동력 확충,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네 가지 목표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지출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부실 국가보조금 사업을 대폭 삭감 폐지하고, 재정투자 방식에 민간 참여를 늘려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올해 예산 기준으로 35%가 넘는 보건 복지 고용 예산과 15%인 교육 예산, 8.9%인 국방 예산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올해 예산 증가 폭 5.2%를 3%대로 낮추는 건 실현하기 벅찬 과제다. 예산 감축에 몰두하다가 취약계층의 생존이 걸린 사회안전망 축소로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 또 정부 예산 감축은 필연적으로 기업과 개인의 소득 감소 및 부채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저성장 국면이 길어지는 부작용도 피하기 힘들다.
“재정 적자는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것”이란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올바르다. 하지만 필수적 국가 역할을 무리하게 축소하는 것 역시 나라의 지속가능성을 약화한다. 예산당국의 균형감각과 정교한 예산 설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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