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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일본 여행 열풍이 뜨겁다. 6월 인터파크와 트리플의 일본 여행상품 판매량은 전월 대비 53% 증가했다. 모두투어의 예약률은 80%나 급증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 엔데믹에 따른 ‘보복여행’ 경향과 함께, 엔화 가치가 역대급 수준으로 하락한 ‘슈퍼엔저(円低)’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엔저 영향은 증시에도 작용해 올 상반기 내국인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도 4만4,752건으로 작년 동기 2만6,272건 대비 2배가량 급증했다.
▦ 최근 3년을 돌아보면 원·엔 환율은 2020년 7월 31일 100엔당 1,141.78원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6월 23일 897.49원까지 낮아졌다. 하락률로는 21.4%이며, 2015년 6월 885.11원 이래 약 8년 만에 800원대 하락을 기록한 셈이다. 300만 원을 갖고 일본 여행을 간다 치면, 3년 전엔 약 26만3,000엔을 환전했지만, 지금은 약 33만4,000엔을 쓸 수 있다는 셈이 나온다. 엔저 인센티브가 이 정도니 너도나도 일본행을 택한다고 볼 수 있겠다.
▦ 원화 가치의 상대적 상승에 자칫 으쓱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GDP 3위권인 일본의 국력과 경제를 섣불리 판단할 일은 결코 아니다. 이번 엔저는 미국 등 세계 주요국들이 금리를 다투어 올리며 강한 긴축기조로 돌아선 가운데 일본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는 금융완화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로 일컬어지는 경제활성화정책과 국채 금리 상승 억제 필요 등 나름의 전략에 따라 일본 스스로 엔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 재미있는 건, 과거 엔저 상황이 닥치면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자동차나 가전 등 한국 수출이 즉각 타격을 입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국내에서도 도요타나 혼다 등 일제 수입차량 가격이 많이 낮아졌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되레 현대나 기아차를 선호할 정도로 우리의 제품경쟁력이 크게 신장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엔화 등락에 춤추던 시절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상전벽해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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