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차관들에게 “카르텔을 구축해 이권을 나눠 먹는 구조는 타파해야 한다”며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스스로 ‘반(反)카르텔 정부’라 규정하며 연일 공직기강을 다잡는 형국이다. 카르텔은 시장을 독점해 가격을 통제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배타적 이익집단을 지칭한다. 기득권 연합군이란 의미로도 설명된다. 윤 대통령이 이제야 새 정부 ‘시대정신’을 안팎에 선언한 느낌이다.
□ 직전까지 상당 기간 현 야권의 시대정신은 ‘검찰개혁’이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문제의식은 더 강해졌다. 2010년 발간된 ‘진보집권플랜’에서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는 ‘검찰은 스스로 막강한 힘을 갖고 문민통치를 받지 않는 유일 기관’이라며 전 세계적 예외 상황임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독점한 기소권을 나눠 권력남용을 막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대전’, 2020년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거치면서 검찰개혁의 본질은 사라졌다.
□ 윤 정부는 시작부터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 반발해 국민적 인기가 올라가고 이후 대선에 승리하는 격변을 거치면서, 시대적 어젠다를 설정할 여유조차 없던 탓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은 몸소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역사에 자리매김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중공업을 발전시켜 한국경제의 수출주도형 성장신화를 쌓았다. 군사정권에 맞선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주의 안착에 기여했고,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로 참여정치 시대를 열었다.
□ 윤 대통령의 시대적 제시어는 뭘까. 검사 출신 홍준표 대구시장은 2017년 대선토론에서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겠다”고 했다. 부정부패를 명쾌하게 일소할 적임자로 제대로 된 검사만큼 똑 떨어지는 직업군은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측근들은 “홍준표를 법무장관 시키면 대통령 친인척을 도륙 낼 것”이라며 뜯어말렸다고 한다. 과거부터 착취당하는 민중은 왕이 지역토호를 척결할 때 열광했다. 검찰총장 출신의 윤 대통령은 강력한 공권력으로 성역 없이 법조카르텔까지 응징해 약자들의 희망이 될까. 국민이 어떻게 인식할지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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