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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은 애플이지만 아시아에선 대만의 TSMC다. 삼성전자(약 430조 원)보다 훨씬 높은 670조 원대다. 모리스 창(92)이 창업 회장이지만 ‘타이완반도체제조회사’라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당초 대만 정부가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투자해 세운 곳이다. 오히려 ‘대만 경제 기적의 아버지’ ‘과학기술의 대부’로 불리는 리궈딩(李國鼎·1910~2001) 전 경제부 장관의 역할이 더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난징이 고향인 그는 1965년부터 10년간 대만 경제·재정부 장관을 지내며 경제개발과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68년 모리스 창이 미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엔지니어로 아시아 조립 공장 물색차 대만을 찾았을 때다. 17년 뒤 모리스 창이 TI 최고경영자에 도전했다 낙마하자 리궈딩은 곧바로 그에게 백지수표를 보내 대만으로 와 줄 것을 간청했다.
□리궈딩은 미국이 대만을 지키는 데엔 관심이 없어도 첨단 반도체 공장은 적극 보호할 것이란 점을 간파했다. 모리스 창은 리궈딩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TI에서 못 이룬 꿈을 TSMC를 통해 실현했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는 많지만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데엔 엄청난 설비가 필요한 만큼 공장 없는 설계 기업(팹리스)의 위탁을 받아 생산을 대신해주면(파운드리) 성공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반도체의 주문자상표생산(OEM)인 셈이다. 설계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고객의 신뢰도 얻었다.
□국제 관계의 본질을 꿰뚫은 정부와 미래를 내다본 기업의 의기 투합 아래 TSMC는 대만의 호국신산(護國神山)을 넘어 아시아 최고 기업으로 우뚝 섰다. 반도체 전쟁이 국가총력전이 된 지금, 우리에겐 리궈딩 같은 혜안의 정치 지도자도 모리스 창 같은 기업가 정신도 잘 보이지 않는다.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이 다시 소재 강국 일본과 손을 잡고, 일본과 대만의 협력도 긴밀해지는데 위기의식조차 없다. 7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5.7%나 감소했다. 14년 만에 최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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