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언론인은 표리부동과 내로남불 콘테스트의 전통적 강자다. 이들은 남의 잘못을 들춰내는 데 익숙하지만, 자신과 자기 편에는 관대하다. 겉으론 근엄한 척하지만 돌아서면 더러운 짓을 많이 한다. 유리한 내용은 부풀리고 불리해지면 눈감고 왜곡하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매년 엎치락뒤치락 선두 경쟁을 하는 걸 보면, 상대에게 1등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대회 판도를 바꿀 신흥 강자가 나타났다. 검사들은 그동안 너무 과소평가됐다. 정치인과 언론인 뺨칠 기량을 갖고 있지만,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다 보니 그 깊이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재주가 너무 뛰어나면, 숨기려 해도 드러난다고 하지 않았나.
김봉현의 술 접대 사건 피의자 신문조서를 살펴보면, 검사들의 탁월한 기량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11월 15일 현직 검사 3명과 전직 부장검사 1명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2019년 7월 18일 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포에버 유흥주점 1번 방에서 김봉현에게 술 접대를 받았지만, 모두 오리발을 내밀었다.
“김봉현에게 향응을 제공받았나?”(검찰) “김봉현을 만난 사실 자체가 없다.”(향응 검사) “김봉현은 당신에게 술 접대를 했다고 주장하는데.”(검찰) “김봉현이 얼마든지 거짓말할 수 있다고 본다.”(향응 검사) 피의자로 조사받는 검사가 계속 거짓말을 하자 검찰이 증거를 제시했다. “당신의 택시 이용내역을 분석해보니, 유흥주점에서 나와서 7월 18일 오후 10시 59분 승차한 것으로 나온다.” 발뺌하던 검사는 당황했다. “왜 그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당혹스럽다.”
수사 대상인 전·현직 검사 4명은 압수수색이 예상되자 대놓고 증거인멸도 했다. 휴대폰을 파기하거나 교체했고 일부는 검찰 내부 메신저까지 삭제했다. 검찰은 휴대폰의 행방을 물었다. “(압수수색 이틀 전) 베이비 페어 박람회에 갔다가 잃어버렸다.”(검사1) “김봉현의 (검사 접대) 자술서가 언론에 공개된 다음 날(압수수색 9일 전) 교체했다. 집 앞 마트 쓰레기통에 짜증 나서 버렸다.”(검사2) “국정감사가 끝나고 (압수수색 12일 전) 교체했다. 기존 휴대폰은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다.”(검사3) “양재천 부근을 걷다가 (압수수색 나흘 전) 분실했다.”(전직 부장검사)
이처럼 검사들의 오리발·증거인멸 기질은 지위고하와 전·현직을 막론하고 놀라울 정도로 한결같다. 술집에 갔는지 안 갔는지,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도 거짓말하고 수사를 방해하는데, 더 큰 사건에선 어떻게 조사를 받을지 눈에 훤하다.
문제는 이런 검사일수록 수사할 때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는 점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들이 거짓말을 하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몰아붙이거나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보통 사람들은 검사처럼 압수수색 타이밍을 예상해 증거를 없앨 만큼 치밀하거나 대범하지 않거니와, 만일 그런 짓을 했다가는 ‘괘씸죄’로 수사를 받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의원들에게 불체포 특권 포기를 요구하기 전에 집안 단속부터 잘했으면 좋겠다. 검사들에게 거짓말 안 하고 휴대폰 없애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자기들은 표리부동·내로남불 행태를 보이면서 남들에게는 진실을 말하고 증거인멸하지 말라고 떠들 자격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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