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조용한 골목길에 서점을 준비하고 있다. 동네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면 궁금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하루에도 한두 분씩 이웃 주민분들이 슬며시 묻는다. "여기 뭐 들어와요?", "서점이요." 궁금증이 해소된 얼굴이지만 이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서점이요? 요즈음 책 읽는 사람들 없지 않나요?" 그렇다. 책 사는 사람들도, 읽는 사람들도 많이 없는데 서점을 차린다고 하니 걱정이 담긴 말을 건넨다. 서점 운영 7년 차다 보니 워낙 익숙했던 말인데, 최근 부쩍 많이 듣고 있다. 이웃뿐만 아니라 정수기 설치 기사님, 폐쇄회로(CC)TV 설치 기사님, 페인트칠을 담당해 주는 선생님 등등 수많은 이가 방문해서 작업을 하다가 비슷한 질문을 하고, 서점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또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반갑지 않은 말을 자주 듣고 사는 요즘이다. 그래, 그 말도 모두 다 관심과 애정이겠지? 생각한다.
그런데 딱 한 분만 다른 답을 했다. 뜨거운 토요일, 1층 서점의 시트지 작업을 해 주는 실장님이었다. "그런데 여기 어떤 공간인가요?", "서점이요?", "오! 잘될 것 같아요!" 실장님은 작업을 다 끝내고 가면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셨다. "진짜 잘될 것 같아요." 빈말인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걱정의 말만 듣다가 전해진 응원의 말에 잠시 피로를 잊게 된다.
시트 시공을 마무리하고 뒤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오는 길. 주변 상점을 살피다가 손님이 없는 한 상점을 보고는 동료에게 말했다. "여기 장사 될까?" 아뿔싸 뜨끔했다.
내가 들었을 때 반가워하지 않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내었다. 게다가 처음 본 가게에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했던 말도 아니다. 그저 오지랖이었다. 인간의 마음이 이리도 간사하다. 내가 들을 때는 예민해지기 마련인데 막상 나는 너무도 쉽게 말을 내뱉는다. 걱정됐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 뭐라도 하나 사서 나왔으면 될 일이다. 왜 나는 타인이 건네는 말에 쉽게 상처받고, 내가 내뱉는 말은 타인에게 실례가 될지 생각하지 않고 쉽게 내뱉는 걸까?
어쩌면 타인에 대해 불필요하고 과도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할 만하니까 했을 텐데.' '당사자가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선택일 텐데.' 나는 왜 이리 걱정을 당하고, 걱정하고 사는 걸까? 게다가 그 누구도 요청하지 않은 걱정이다. 걱정과 애정이 담긴 말이라고 해도 그 말은 상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충고보다는 응원의 말이 건네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여러모로 더 유익하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그 힘을 따라가게 되니까.
애정과 걱정이라면 "번창하세요"라는 말을 건네면 될 일이고 돈을 지불해서 물건이라도 하나 사서 나오면 된다. 타인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내뱉는 말도 잘 고르려고 한다. 괜한 오지랖의 말이라면 속으로 다시 삼키고, 애정과 관심의 마음이라면 지갑을 연다.
서점을 개업했다.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분들, 근처 사시는 분들 등 다양한 사람이 오가고, 그만큼 많은 말들이 건네진다. "어? 생각보다 좁네?", "책 팔아서 이 공간 운영할 수 있어요?"라는 말에 지칠 때면 실장님이 건넨 "진짜 잘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떠올린다. 오랜 손님들이 전해주는 '다 잘 될 겁니다'라는 말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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