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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떠나고 대게만 남은 고장에 '미래 영덕의 시금석' 청년들이 몰리고 있다

입력
2023.07.22 04:30
수정
2023.07.22 20:5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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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극·장: #2 영덕 뚜벅이마을]
트레킹 코스 활용, '6주·3박 4일 살아보기'
232명 체험, 10명 정착… "미래의 시금석"
이동식 조립식 주택 지원, 청년 안착 도와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 상영합니다.

'뚜벅이 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 전경. 영덕군 제공

'뚜벅이 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 전경. 영덕군 제공

111. 지난해 경북 영덕군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다. 1년이 365일인 점을 감안하면, 겨우 3, 4일에 한 명꼴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 셈이다.

‘영덕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값비싼 해산물 ‘대게’를 떠올린다. 냉정히 말해 대게를 빼고는 딱히 내세울만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남쪽에는 포스코 등 산업체들이 즐비한 경북 제1의 도시인 포항시가 있고, 북쪽에는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의 한울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울진군이 있다. 일자리가 꽤 있는 포항시와 울진군도 인구가 자꾸 줄어 고민인데, 영덕군에서 인구가 늘어나길 바라는 건 꿈만같은 생각이다.

실제로 영덕군의 인구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난 지 오래이고, 지방소멸과 관련한 각종 지수에서는 가장 위험하다고 분류되는 최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화 사회로 분류하는데, 영덕군은 40%를 넘어서 일찌감치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10년 전 2013년 말 4만142명이던 인구는 해마다 500명씩 꾸준히 감소해 지난달 말 3만4,351명을 기록했다.

경북 영덕군 인구와 영덕군 영해면 뚜벅이 마을 지도. 그래픽=김문중 기자

경북 영덕군 인구와 영덕군 영해면 뚜벅이 마을 지도.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런데 출산장려금, 아동수당, 양육수당 등 어떤 묘책을 써도 인구 증가는 그저 남의 일 같던 영덕군에 최근 2, 3년 전부터 외지 사람들이 하나 둘 터를 잡고 있다. 더구나 ‘MZ’세대로 불리는 20, 30대 청년 27명이 들어왔다. 젊은이들이 안착한 곳은 대게로 유명한 강구면도 아니고, 군청과 법원 등이 있어 비교적 번화한 영덕읍도 아니다. 이들 중 일부는 영덕군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 울진군으로 넘어가는 경계지점에 자리한 인구 6,000명 남짓의 영해면에, 나머지는 영해면의 절반도 되지 않는 인구 2,600여 명의 병곡면이라는 소읍에 정착했다.

27명의 청년들은 일정한 수입 없이도 일손이 부족한 지역 농가에 아르바이트를 뛰거나 주말에 잠깐 빵을 구워 팔고 지역 축제에 작은 공연을 맡으면서 연세 지긋한 할머니ㆍ할아버지 세대 주민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볼거리와 즐길거리 가득한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지방 작은 마을에 안착한 청년들은 “아무 것도 없기에 오히려 할 게 많아 좋다”며 한적한 시골 생활에 점점 녹아 들고 있다.

경북 영덕군에 정착한 청년 한지석(왼쪽부터)씨와 이지안씨, 이현준씨와 오성규씨가 18일 영덕군이 영해면 성내리에 마련한 이동식 청년주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덕=김정혜 기자

경북 영덕군에 정착한 청년 한지석(왼쪽부터)씨와 이지안씨, 이현준씨와 오성규씨가 18일 영덕군이 영해면 성내리에 마련한 이동식 청년주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덕=김정혜 기자


'걷다 보니 좋아서 남았다'

대구 출신의 오성규(38)씨는 1년 전 영덕군에서 외지 청년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운영되는 ‘8주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남았다. 8주 살기는 영덕군이 해안가를 따라 조성한 64.6㎞의 트레킹 코스 ‘블루로드’를 걸으며 곳곳을 둘러본 뒤, 봉사활동 등을 통해 주민들과 어울리며 영덕을 알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오씨는 “영덕에 살 작정으로 참여했지만, 무얼 하면서 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며 “걷는 걸 좋아하고 걸을 때 보이는 풍광이 정말 아름다워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에서 해저 지형을 관측하는 일을 했던 그는 지금까지 해 온 일과 전혀 상관없는 특산물을 활용한 빵가게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창업 계기는 “농가 일손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복숭아와 멜론 등 지역 특산물이 맛은 그대로 인데 약간 망가졌다고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다. 오성규씨는 상품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하급품 취급을 받는 특산물을 빵 재료로 담아 선보일 계획이다.

경북 영덕군 청년마을 정착 사업인 뚜벅이 마을의 6주 살아보기 참가자들이 이달 초 트레킹 코스 블루로드를 걷다가 영덕지역 특산물인 대게 조형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메이드인피플 제공

경북 영덕군 청년마을 정착 사업인 뚜벅이 마을의 6주 살아보기 참가자들이 이달 초 트레킹 코스 블루로드를 걷다가 영덕지역 특산물인 대게 조형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메이드인피플 제공

강원 춘천이 고향인 한지석(26)씨는 나이는 오성규씨보다 열두 살 어리지만 영덕 주민으로는 1년 선배다. 2년 전 영덕군의 ‘10주 살기’ 체험 후 정착했다. 한씨는 “걷는 게 좋아 남았고, 같은 구간을 걸어도 늘 다른 풍광이 펼쳐지는 영덕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대학에서 한식 조리를 공부한 그는 전통주에 관심이 많아 창업을 계획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거주하는 영해면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영덕군 창수면에서 면적 1,322㎡의 땅을 빌려 초당옥수수를 키운다. 한씨는 “다행히 비가 많이 오기 전 수확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팔았는데 기대 이상 잘 팔려 소득이 제법 괜찮았다”고 미소지었다.

경북 영덕군의 뚜벅이 마을 6주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트레킹 도중 바닷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메이드인피플 제공

경북 영덕군의 뚜벅이 마을 6주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트레킹 도중 바닷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메이드인피플 제공


꼭 살지 않아도 되는 뚜벅이 마을

뚜벅이 마을은 영덕군이 블루로드라는 트레킹 코스를 활용해 청년 유입과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2021년 도입한 사업이다. 영해면 일대를 거점으로 삼고 추진했지만, 마을의 범위가 딱히 정해진 건 아니다. 뚜벅이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청년들이 참여하도록 한 뒤, 좀 더 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주택과 일자리를 지원해준다.

외지 청년들이 뚜벅이 마을에 보통 첫 발을 내딛는 프로그램은 ‘6주 살아보기’와 ‘3박4일 살아보기’이다. 1년에 단 한 번 진행되는 6주 살아보기는 모집을 통해 10명을 선발한다. 매번 경쟁률이 5대 1 이상으로 치열하다. 이들은 영해면 한 가운데 있는 게스트하우스 ‘덕스(DUKS)’에서 머물며 약 1주 간 영덕군의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64.6㎞의 블루로드를 걷고 창업 경험에 필요한 전통주와 커피, 수제청 만들기, 영덕의 자연을 즐기는 서핑, 바닷가 요가 등의 수업을 받게 된다. 또 지역 봉사로 복숭아밭과 멜론밭 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고, 주민교류 프로그램으로 인근 복지센터에 두 차례 방문한다. 주민들과 영덕지역 민속놀이인 ‘월월이청청’을 함께 하는 시간과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로를 탐색하는 상담도 마련돼 있다. 월월이청청은 손을 이어 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 돌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놀이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 뚜벅이 마을 청년들이 지난해 7월 영해만세시장에서 뚜벅이 장터 축제를 열고 직접 만든 상품과 음식을 주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메이드인피플 제공

경북 영덕군 영해면 뚜벅이 마을 청년들이 지난해 7월 영해만세시장에서 뚜벅이 장터 축제를 열고 직접 만든 상품과 음식을 주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메이드인피플 제공

3박4일 살아보기는 캠핑과 해안선을 따라 총 4코스로 돼 있는 블루로드를 걷는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영덕군이라는 지역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대부분은 프로그램을 마친 후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잠시 더 머물다 떠나기도 하고, 처음엔 바로 떠났다가 다시 온 청년도 있다. 지금까지 232명이 살아보기를 거쳐갔고, 이중 10명이 안착했다. 김혁주 영덕군 이웃사촌마을팀 주무관은 “뚜벅이 마을 사업은 청년인구 유입에 목표점을 두고 있지만, 본래 영덕을 널리 알리는데 그 취지가 있다”이라며 “영덕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점이 부각되면 정착하는 청년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덕군이 개발한 트레킹 코스 블루로드. 영덕의 해안가를 따라 64.6㎞를 걷는 길로 총 4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영덕군 제공

경북 영덕군이 개발한 트레킹 코스 블루로드. 영덕의 해안가를 따라 64.6㎞를 걷는 길로 총 4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영덕군 제공


뚜벅이가 아닌 뚜벅이 마을의 청년들

영덕군은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에게 영해면 성내리에 원룸(21㎡) 형태의 조립식 주택을 지원한다. 총 10채가 마련됐는데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거쳐 뚜벅이 마을에 계속 머물고 있는 오성규씨와 한지석씨가 이곳에 산다. 거주 자격 요건을 갖추면 약간의 월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어, 뚜벅이 마을의 6주 살기가 아니라도 다양한 이유로 영덕에 안착한 청년들이 여기 거주한다. 청년주택 바로 옆에는 영덕군이 마련해 준 공유오피스 ‘다오소’가 있다. 한지석씨 등 뚜벅이 마을의 살아보기를 통해 정착한 10명의 청년들 외에도 영덕군에서 여러 일을 하는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소멸 위기에 처한 영덕군에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영해면 주민 윤영태(74)씨는 “노인들만 남아 썰렁했던 마을에 손주 같은 젊은이들이 들어와 북적이니 사람 사는 동네 같다”며 “폐가같은 빈집이 있던 자리마다 청년들이 거주하는 집과 사무실이 생겨 거리도 환해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영덕군은 작게 나마 열매를 맺기 시작한 청년 인구 유입 사업에 계속해 힘을 쏟을 계획이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들도 떠나는 마당에 27명의 안착은 미래 영덕의 시금석”이라며 “청년 창업가에 저렴하게 상가를 임대하는 방안과 함께 상설 소통창구를 개설해 애로사항을 지속적으로 파악해 돕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광열 경북 영덕군수 등 영덕군 관계자들이 지난 5일 영덕군 영해면 뚜벅이 마을에 마련된 공유오피스 '다오소'에서 귀촌청년들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는 소통의 날 시간을 갖고 있다. 영덕군 제공

김광열 경북 영덕군수 등 영덕군 관계자들이 지난 5일 영덕군 영해면 뚜벅이 마을에 마련된 공유오피스 '다오소'에서 귀촌청년들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는 소통의 날 시간을 갖고 있다. 영덕군 제공


영덕=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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