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들이 분노의 포스트잇으로 학교 벽을 뒤덮었다. 21일 서울 서초구 20대 새내기 교사가 숨진 초등학교 앞에는 땡볕 아래에서 검은 옷을 입은 선생님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행렬이 지나간 학교 건물 외벽에는 교사들이 직접 한 자 한 자 적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었다. 글씨체가 다른 형형색색의 메모지에는 그동안 보호받지 못했던 교사의 권리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다.
추모공간에 비치된 포스트잇에 자필로 메시지를 남긴 교사들은 교권 침해에 늘 노출돼 있는 자신들의 상황을 언급했다.
가장 먼저 학부모 민원 대응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듯한 교사들이 남긴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선배 교사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포스트잇에는 '후배님과 같은 아픔을 겪고 꾸역꾸역 긴 세월을 버텼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을 신규교사라고 밝힌 추모객은 포스트잇 세 개를 이어 붙여 장문의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메모지에는 '고작 1년 반 근무하면서 교사가 민원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들어 왔다'며 '언젠간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라고 토로했다.
'나는 너였다', '나는 당신입니다' 등의 문구도 종종 있었다. 학교에서 교권 침해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비단 특수한 상황이 아님을 드러내며 고인과 연대하는 교사들의 메시지였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교사 개인의 열정으로 해결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교사도 있었다. 해당 포스트잇 작성자는 '교사로서 사명감과 열정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무차별적인 민원, 어떤 보호 장치도 없는 현실이 힘들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교사도 '교사 혼자 감당하는 시스템'의 변화의 필요성을 토로했다.
교사들은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다짐을 표했다. 한 교사는 '미안해요. 선배 교사인데 도와줄 수가 없었네요'라고 남겼다. 김포 금빛초 교사들은 '후배님. 외로운 날들에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며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교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경기 동료 교사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교사들이 남긴 추모의 글들은 하나같이 교권추락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증언한다. 포스트잇 벽은 한 교사의 죽음으로 학부모 민원 대응, 학교 폭력 등 교육 현실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일선 교사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이제 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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