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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각자도생 사회

입력
2023.07.24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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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남전 원중식의 무신불립 1987년 작.

고 남전 원중식의 무신불립 1987년 작.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재난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을 자조적(自嘲的)으로 자주 내뱉게 된다. 작년 '이태원 참사', 올여름 집중호우로 인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그리고 경북 예천에서 구명조끼와 같은 안전 장비도 없이 구조작업에 동원되었다가 급류에 휩쓸려 아까운 생명을 잃은 해병대 장병 사건 등등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접할 때마다 허탈감과 막막함 그리고 언제 어디선가 나에게도 이런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우리의 마음을 졸여온다. 일상적인 하루의 평범한 삶이 국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각자가 알아서 불행한 사고를 당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살아갈 방도(方途)를 찾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게 된다.

살아가면서 재난과 재해에 직면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요즈음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하고 절망(絶望)하게 만드는 것은 불행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묻는 작업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주어지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커지기 마련이다.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담당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모습을 볼 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의 안전 확보에 대한 믿음과 희망도 점차 줄어들게 된다. 사건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꼼꼼하게 따져 묻는 것은 불행한 일이 다시 발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비책의 하나이다. 반복되는 재난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분명 존재하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거나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되면 결국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만 억울하게 만드는 불공정하고 부정직한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공자(孔子)는 정치하는 방법을 경제적 측면에서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족식·足食), 국방의 측면에서 '군비(軍備)를 충실히 하는 것'(족병·足兵),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 측면에서 '백성들이 정부를 신임하게 하는 것'(민신지·民信之)으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공자는 경제와 국방이 정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정치의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임을 강조한다. 정치의 근간이 되는 정권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붕괴하게 되면 경제고 국방이고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다. 공자가 "백성으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하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고 주장한 이유이다.

정치의 목적은 한마디로 국민 개개인이 가족과 함께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평범한 일상의 삶을 유지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재난을 당해 아파하고 있는 국민 앞에서 머릿속으로 다음 선거에서 득표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것에 앞서, 이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감싸 안고 함께 아파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과 '공감 능력'을 발휘할 때, 국민들도 그들의 말과 행동에 신뢰를 보낼 것이다. 맹자가 왕도정치의 출발점을 백성의 일상적 삶의 안전을 도모하는 '보민(保民)'에 두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으로부터 국민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진정으로 함께하고자 하는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지혜를 몸으로 실천할 때이다.


박승현 조선대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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