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는 지금 파업 중이다. 미국작가조합(WGA)과 미국배우조합(SAG-AFTRA) 조합원들이 현장을 떠나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의 동시 파업은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작가조합원들은 지난 5월부터 펜을 놓았고, 배우조합원들은 지난 14일부터 연기를 중단했다. 할리우드는 올 스톱 상태가 됐다. 파업이 길어지면 올 하반기 개봉이 예정됐던 ‘듄2’ 등 여러 화제작의 공개가 미뤄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배우들이 파업 중에는 영화 홍보 활동까지 거부해서다. 내년 열릴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파업을 부른 쟁점은 인공지능(AI)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AI 기술을 속속 도입하면서 작가와 배우들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로 작가 없이도 시나리오 작성이 가능하다. 배우들의 목소리와 얼굴은 기존 영상과 이미지를 활용한 딥페이크 기술로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배우가 죽어도 살아 있는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시킬 수 있게 됐다.
작가들과 배우들은 AI기술 적용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스튜디오들에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의 일자리와 권익을 지켜낼 수 있는 새 표준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부상하면서 재상영분배금(Residuals) 산정 기준을 새로 만들자는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재상영분배금은 콘텐츠 시청 실적에 따라 작가와 배우, 감독 등에게 추가로 지급되는 돈을 말한다. 스튜디오라고 쉽게 양보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특히 AI 기술 활용은 비용 절감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양쪽 다 미래를 건,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조합들의 활동상이다. 작가조합은 2달 동안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모아놓은 돈이 얼마 없는 작가들은 조합 지원금으로 버티고 있다. 16만 명이 소속된 배우조합도 다르지 않다. 파업 중 생계가 힘들 배우들을 돕기 위한 재단이 따로 있다. 프로레슬러 출신 유명 배우 드웨인 존슨은 최소 100만 달러를 이 재단에 최근 기부했다. 또 다른 유명 배우 맷 데이먼은 “죽고 사는 문제”라며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조합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강고한 연대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연금과 의료보험까지 제공하며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해 온 두 조합의 오랜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파업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국내라고 AI 무풍지대는 아니다. AI 작가와 AI 배우는 곧 현실이 된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등 직능별 조합이 있고 여러 단체가 있으나 미국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감독조합을 제외하면 조합원 회비를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합원 복리후생은커녕 조합 운영조차 하기 버겁다. 조합원들의 소속감과 연대감은 대부분 약하다. 감독조합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가위바위보로 뽑아야 했다.(물론 진 사람이 대표가 됐다.) 책임과 업무는 많으나 금전적 이익은 전혀 되지 않아서다.
직능별 단체들이 부실한 상황에서 과연 대형 영화사들에 맞서 단체행동을 할 수 있을까. 산업이 건강하기 위해선 어느 한쪽의 주장과 이익이 일방적으로 관철돼서는 안 된다. 한국의 배우와 작가 등은 곧 닥칠 미래에 대한 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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