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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판, 성주신 없는 집

입력
2023.08.04 16: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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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배우 마동석이 영화 '신과 함께'에서 현동네 가족을 지키는 성주신으로 등장하는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마동석이 영화 '신과 함께'에서 현동네 가족을 지키는 성주신으로 등장하는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2018년 영화 ‘신과함께-인과연’에서 배우 마동석은 손자 현동과 사는 허춘삼 집의 성주신으로 나와 삼차사가 할아버지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걸 막는 연기를 폈다. 민속 신앙에서 성주신은 가택과 가족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다. 제사를 지낼 때 성주상부터 차리고 이사할 때에도 성주단지를 챙기는 연유다. 이런 성주신은 집의 대들보를 올릴 때 자리를 잡는다. 대들보는 세로로 선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천장과 지붕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가로 구조물인 들보(량·梁) 가운데 가장 큰 보를 일컫는다. 그래서 대들보를 올려 집의 골격을 완성하는 상량식은 가장 중요한 공정이자 의식으로 여겨졌다. 상량문을 대들보에 쓰고, 성주신을 상량신으로도 부르는 이유다.

□대들보가 없는 집은 성주신이 깃들 수 없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건축 기술이 점점 발전하며 대들보를 생략한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없을 무(無)자를 쓰는 무량판 구조다. 들보 자리만큼 층고를 높일 수 있고 원가와 공기도 줄일 수 있어 아파트 등에도 확산됐다.

□그러나 무량판 구조는 가로 보가 없는 만큼 천장의 하중이 기둥이 서 있는 지점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반드시 기둥과 천장이 만나는 접합부에 하중을 분산할 수 있는 구조물을 보강해줘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천장이 기둥 부분만 남긴 채 무너져 내리며 기둥이 천장 위로 솟는 펀칭이 발생한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그랬다. 당시 건물 천장(위층 바닥)이 그대로 주저앉아 아래층 바닥과 맞닿은 채 켜켜이 쌓인 모습은 팬케이크의 단면을 떠올리게 했다. 사망자는 500명도 넘었다.

□초전도체까지 나온 기술의 시대, 무량판 구조 자체에 죄를 물을 순 없다. 문제는 그동안 눈부신 기술의 발전에 비례해 이를 뒷받침할 인간의 양심은 나아진 게 없다는 데 있다. 설계도면대로 공사하는 건 기본적인 약속인데 이런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는 게 우리 수준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의 원인인 철근 빼먹기도 순살 아파트로 재연됐다. 지옥에서 천벌을 받을 짓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지금 대들보도 뼈대도 없이 위태롭게 서 있는지 모른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비극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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