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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틱 불사조

입력
2023.08.07 17: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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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독립전쟁 기념물.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 전까지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식민지였다. 위키피디아 캡처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독립전쟁 기념물.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 전까지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식민지였다. 위키피디아 캡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아일랜드 국가대표는 근성의 팀으로 불릴 만큼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강호 독일과 카메룬, 사우디아라비아 조에 속했던 아일랜드는 카메룬, 독일에 0-1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지만 끝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강호 스페인과 맞선 16강전에서도 예의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뽑아냈지만 승부차기에서 무릎을 꿇었다. 당시 국내에선 아일랜드팀에 관심이 없다가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꺾이지 않는 투지에 반해 팬이 된 사람이 많았다.

□ 그도 그럴 것이 500만 안팎의 소국 아일랜드가 우리와 통하는 면이 많았다. 잉글랜드 지배하에 있었던 수백 년 식민역사에 19세기 감자 대기근에 따른 대규모 디아스포라, 강한 민족성과 끈끈한 가족애가 그렇다. 오랫동안 유럽의 가난한 나라로 인식됐던 아일랜드는 1990~2000년대 초반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한국 등 아시아 네 마리 용에 빗대 ‘셀틱 타이거’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사정 협약과 법인세 인하, 다국적 기업에 대한 개방 덕분이다.

□ 우리가 고도성장 끝물에 IMF 외환위기를 맞았듯이 아일랜드도 세계 금융위기 후폭풍에 버블이 터졌다. 마이너스 성장과 부동산 위기, 은행 부실, 다국적 기업 이탈로 인한 경제 파탄에 수십만 직장인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IMF와 유럽연합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던 아일랜드는 3년 만인 2013년 IMF 체제에서 벗어났다. 경제 위기에선 사회 혼란이 커지고 자살률도 높아지기 마련인데 이탈리아 그리스 등 구제금융 유럽 국가에 비해 회복 탄력성이 높았다. 유엔의 세계행복리포트는 아일랜드 사례를 분석하면서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가 높은 사회 덕분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 최근 OECD 등의 자료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지난해 1인당 GDP는 10만4,237달러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높은 1인당 GDP가 다국적 기업의 유럽 본사가 몰린 착시효과라는 분석도 있지만 ‘셀틱 불사조’로 불릴 만큼 제2의 도약을 구가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적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로선 갖은 부침을 겪고도 부활한 아일랜드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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