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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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정부가 개최한 국제행사가 또 있다. 바로 전 세계 한국어 교육자들을 위한 '2023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다. 4년 만의 대면행사로 열린 올해 대회는 지난 7일부터 나흘간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경험을 나누는 자리로, 올해로 15번째다. 첫 회(2009년) 때와 비교하면 한국어의 국제적 위상은 상전벽해 수준이다. 일명 K브랜드를 단 한국 문화의 인기는 한국어 학습 열기로 이어졌다. 그만큼 양질의 한국어 선생님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이 대회는 그런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행사기도 하다. 실제 개회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해외 한국어 교육의 중추인 세종학당을 현재 248곳(85개국)에서 2027년 350곳까지 확대하는 등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들을 발표했다. 축사를 맡은 박보균 문체부 장관도 학습자들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그늘 하나 없이 밝은 행사처럼 보이지만, 한국어 교원들의 열악한 실상을 떠올리면 겉만 화사한 잔치라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2만~3만 원대 시급에 3개월(10주)짜리 단기 계약이 예사인 일터에서 한국어 교원들은 일반 유급휴가나 출산휴가는 꿈도 못 꾼다. 10년을 넘게 일해도 퇴직금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모든 게 국내 한국어 교육 현장의 민낯이다.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가족지원센터 등은 물론이고 석사 학위에 국가 자격증(국어기본법상)을 소지한 '고스펙' 교원이 대다수인 어학당(대학교 한국어교육 부설기관) 상황도 크게 낫지 않다.
열악한 처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 온 건 4년 전쯤이다. 처음으로 한국어 강사들로만 이뤄진 노동조합(민주노총 대학노조 연세대학교한국어학당지부)이 설립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무기계약직 전환이나 임금 인상 등의 성과도 있었으나 일부 어학당에 국한된 변화였다.
현재 한국어 세계화의 버팀목은 '공짜 노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 1인당 30분씩 무조건 상담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상급자에게 제출까지 해야 하는데 아무런 수당이 없다." "학기마다 특별활동을 하러 외부로 나가서 더 오래 일해도 근로시간으로 산정되지 않는다." 최근 민주노총의 관련 연구보고서에는 이런 사례가 한가득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교원의 80% 이상이 수업 시간에 따라 급여를 받는데 수업 준비, 시험 출제 및 채점, 학생 관리 등 수업 외 업무에는 금전적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어 교원의 평균 연 수입은 1,357만 원(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정부도 그 심각성을 알고는 있다. 문체부는 작년에 처우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도 진행했다. 대학에서 가르쳐도 고등교육법상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어 교원의 법적 지위 등 물 새는 곳들은 이미 확인이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문체부 외에도 교육부, 외교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한국어 교육과 관련된 부처는 많으나 근본적 개선을 위해 총대를 멜 부처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저임금·고용불안 구조에서 베테랑 선생님을 바라는 건 참 염치없는 일이다. 한국어로 한국 사회·문화를 세계인에게 정확히 알리고자 하는 그들의 사명감을 볼모로 삼는 현실을 외면하는 일은 그만하자. '공짜 노동'으로 지탱한 K브랜드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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