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논란 많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최근 공청회에서 구체적인 근무 조건을 제시했다. 정부 인증기관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면 계약을 맺은 가정에 출퇴근하며 가사∙육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정 입주는 원천 금지이고,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다. 이르면 연내 100여 명을 대상으로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전히 반발이 빗발친다. 한쪽에선 돌봄가치의 저하, 인권침해 가능성, 심지어 현대판 노예제까지 얘기한다. 당초 조정훈 시대정신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만 보면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다. 조 의원은 “싱가포르처럼 월 100만 원 수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용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 계획안을 보면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최저임금도 보장하고, 입주도 금지했다. 정부 인증 기관이 관리를 하고 한국 언어와 문화, 아동학대방지 교육도 하겠다고 한다.
□다른 쪽에선 너무 비싸다며 180도 상반된 비판을 한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9,860원으로 월 206만74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월 200만 원 넘게 주고 채용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가세한다. 그는 “시범사업 참여가 유력한 필리핀은 1인당 GDP가 우리의 10분의 1 정도”라며 “200만 원 이상 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법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도 무시하자는 건데 너무 무책임하다.
□거창한 출산대책이 아니라 국민 편익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우가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듯 가사서비스도 품질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요즘 가사도우미 시세는 많게는 시급 2만 원 이상, 적게는 1만2,000원 수준이다. 이미 2배가량 가격 차이가 있다. 여기에 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1만 원 이하의 선택지 하나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가성비가 높으면 쓰고, 아니면 안 쓰면 그만이다. 소비자 몫이다. 단, 시범 기간에 안전과 인권을 책임지는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하는 건 정부 역할이다. 이런 선택지 실험조차 기를 쓰고 막을 필요가 있겠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