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내륙을 남북으로 관통한 제6호 태풍 ‘카눈’이 어제 오전 6시께 평양 남동쪽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했다. 지난달 28일 태풍으로 발달한 뒤 무려 14일간 유지되면서 한반도 내륙에만 20시간 넘게 머물렀다. 이동경로도, 유지 시간도, 이동 속도도 모두 이례적이다. 피해가 우려만큼 크지 않아 한숨을 돌렸지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기후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된다.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대체로 북동진을 하며 동해상이나 일본 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카눈은 한반도 내륙 중앙을 그대로 관통했다. 관측을 시작한 1951년 이후 이런 경로는 없었다. 북상하는 태풍을 동쪽으로 밀어내는 대기 상층 제트기류가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후변화 영향이 컸다. 평년보다 뜨거운 바닷물이 태풍에 더 많은 열과 수증기를 공급하며 느리고 강하게 한반도 내륙 진입을 이끌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기후재난은 더 빈번해질 것이다. 태풍이 지나자마자 주말부터 다시 폭염이 예고됐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불렀던 극한호우는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릴 거라고 한다. 카눈보다 더 별종의 태풍이 덮쳐올 수도 있다.
어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발언은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다. 이 장관은 중대본 회의에서 “대통령께서 과감한 사전통제와 주민대피를 강조하셨던 만큼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통제와 대피가 가능했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설피해가 360여 건에 달하긴 했지만, 사망∙실종자가 2명에 그치는 등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송 참사 아픔이 여전한데 이렇게 자찬하고 있을 때인가.
과거 기후에 맞게 설계된 방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쇄신하지 않으면 일상화한 기후재난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개발, 방치된 취약시설, 낡은 재난대비 매뉴얼 등을 최악의 상황에 맞게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만만찮은 작업인 만큼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카눈은 지나갔지만, 더 강하고 독한 재난이 곧 닥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