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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을 내버리자

입력
2023.08.19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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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완전한 익명성'은 지금 온라인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게티이미지

'완전한 익명성'은 지금 온라인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게티이미지

전국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실상 테러나 다름없는 ‘묻지마 범행’은 끔찍하고, 안타깝고, 공포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터질 때만 기다리고 있는 분노가 우리 사회에 가득히 차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오갈 데 없는 분노가 마침내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닌, 오히려 시작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 ‘살인 예고 글귀’를 올렸다가 잡혀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9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칼부림 예고 글을 올렸다가 경찰에 잡힌 다음에 ‘누가 칼부림을 하겠다는 주어가 없었다’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한 사람이 있었다. 또 ‘오후 세 시에 모 고등학교에 갈 거야...(중략)...신이 명령한 대로 따르는 거야’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잡히고 나서는 “협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야구장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 예고가 올라와 혼동을 빚기도 했다. 경찰은 이른바 ‘살인 예고’ 글 383건을 확인해 작성자 164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17명을 구속(8월 16일 기준)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묻지마 범행을, 테러를 저지르고 싶은 사람이 많은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관련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 90%는 그저 ‘재미있는 장난’이라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멍청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나마 다행히도.

현대 인터넷 문화가 이런 종류의 ‘멍청함’을 장려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 관심은 그 자체로 강렬한 도파민을 제공한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정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이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주는 것은 참으로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관심을 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광기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는 그 광기를 실제로 실천한다. 서현역의 그 살인마처럼.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거대 커뮤니티 사이트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풍선 효과’가 무엇인지 제대로 실감할지 모른다. 지금의 커뮤니티들은 더욱 음지로 숨어들고, 그 속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대신, 나는 주장한다. 적어도 자기가 쓴 글은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익명을 완전히 보장하는 거대 커뮤니티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는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본인 인증 후 로그인하도록 해야 하고, 올라오는 글을 철저하게 감시할 의무를 져야 한다.

물론 이런 방법은 웹이 만들어진 이상에 반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30년 전,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저자 이원복은 작품에 이렇게 썼다. “네티즌에겐 민족의 구분이 없다” “네티즌은 피부색을 초월한다” “네티즌은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다” “네티즌은 빈부 차이를 모른다” “그러므로 네티즌의 세계는 진정한 민주주의 세계다!”

열려 있는 웹은 아름다운 이상이었고, 익명성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믿어졌다. 하지만 익명성은 그 이상을 실현하기는커녕, 인터넷을 하수구로 만들었을 뿐이다.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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