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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80년 홍콩 배우 훙진바오(홍금보)의 귀타귀는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코믹하면서도 유연한 액션과 중국의 귀신, 요괴인 강시가 만난 호러물인 귀타귀는 신선한 재미를 더했다. 리샤오룽(이소룡)이나 소림사 시리즈를 잊게 만들었고, 청룽(성룡)의 코믹 액션을 잇는 다리가 됐다. 당시 어린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콩콩 뛰는 강시 흉내를 내며 놀았다. 한참 동안 강시 영화는 국내에서도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던 80년대다.
□ 21세기 들어 미국에서 좀비 영화가 인기를 끌었을 땐 개인적으로는 식상했다. 부두교 주술에 기인했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켰던 좀비물은 개인적으로 강시 영화의 아류 정도로 여기던 참이다. 청소년 시절 훙진바오와 강시 영화의 이미지가 각인된 게 컸기 때문이다. 강시나 좀비나 동서양의 공통적인 문화 아이템으로서 통하고 있단 느낌도 받았다.
□ 7월 말 경기 성남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한마당 축제에 참가한 중국 태권도팀이 강시 태권체조를 선보였다가 몰매를 맞았다고 한다. 차이나 엑스라는 이름의 이 중국팀은 강시 동작을 태권도 품새에 접목시켜 이 대회 태권체조 시니어부문 1위에 오른 게 화근이다. 전통과 현재를 접목하는 퓨전이 넘쳐나는 마당에 과하다. 사실 창의성과 절도 있는 품새가 평가를 받았지만, 심판진 가운데 40~50대 향수를 크게 자극한 게 입상을 한 배경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1위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면서 중국 내에서는 나라 이미지에 먹칠했다는 비난이 인터넷 매체, 네티즌 등으로부터 쏟아졌다. 청나라 복장에 강시 동작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태권도협회는 차이나 엑스가 소속된 광둥성 선전시 엑스태권도관 설립자격 취소와 함께 체육관 코치의 지도자 자격도 취소했다고 한다. 중국이 서양의 좀비보다 더 세계화할 수 있는 동양 문화 아이템을 스스로 땅에 파묻는 꼴은 아닌지 안타깝다. 훙진바오라도 나서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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