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극·장: #5 경기 양평군]
역사와 문화 등 스토리텔링 통해 소속감 키워 정착
청년 작가 유입으로 지역주민과 소통, 마을 활력소
5년 새 인구증가율, 전국 77개 군 단위 지자체 1위
편집자주
지역 소멸 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 상영합니다.
경기지역 동부권 끝자락에 위치한 양평군은 도내에서 마지막 남은 군(郡) 단위 지방자치단체 3곳(가평ㆍ연천) 중 하나다. 면적은 경기도 내에서 가장 넓은 877.10㎢로 여의도(2.9㎢)의 300배 수준이다. 얼핏 농촌도시(주민 대부분이 농촌에 종사)로 인식될 수 있지만 인구수는 12만4,544명(2023년 6월 말 기준)으로 경기도 내 시(市) 단위 지자체 여주시(11만4,000여 명)와 동두천시(8만9,000여 명), 과천시(8만800여 명)보다 많다.
자연을 품은 도시, 노후에 전원생활하기 좋은 서울 근교 휴양지로 각광받으면서 인구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상수원보호구역과 자연보전권역 등 갖가지 개발 제한으로 도시화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실제 2018년 11만7,361명이던 인구는 5년 새 7,183명이나 증가했다. 전국 77개 군 단위 지자체 중 인구증가율 1위다. 전철 개통과 아파트 등 도시 개발이 적잖은 역할을 했지만 양평군이 정부와 함께 추진한 지방소멸 대응 정책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인구유입과 전출 방지 정책 병행
양평군의 인구 증가는 출생이 아닌 유입에 따른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순이동인구(전입자 수에서 전출자 수를 뺀 수치)는 2020년 2,440명, 2021년 3,341명으로 나타났다. 양평이 농촌도시지만 토착민보다 이주민이 60% 이상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2005년 전국 최초 친환경농업특구, 2015년 자전거레저특구, 2021년 헬스투어힐링특구 등에 잇따라 선정되면서 ‘물 맑은 양평’이라는 청정도시 이미지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게 양평군 설명이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로 1위 제주, 2위 속초에 이어 양평을 3위로 꼽기도 했다. 양평군은 인구 유입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면서도 전출자 방지를 위한 정책도 병행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양평살이’다
'양평살이' 해봅시다
인천 강화도 한 초등학교에는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아닌 양헌수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양헌수 장군은 1862년 병인양요 당시 인천 강화도 정족산성 전투를 지휘해 프랑스군을 물리친 인물이다. 유명세를 타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는 양평 출신이다.
양평에는 ‘떠드렁’이라는 이름의 섬이 있다. 과거 언제인지 모르나 큰 홍수가 나 충북 충주에 있던 섬 하나가 떠내려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그 섬에는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청개구리’의 원조 설화도 있다. 조선시대 인조반정의 주역인 이괄 장군의 아버지와 얽힌 얘기다.
또 양평은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 등 우리나라 3대 종교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조선 임금 정조와 다산 정약용의 스승인 권칠신이 태어난 곳이자, 한국천주교의 근원지인 양근성지가 있다. 유명한 용문사 외에 우리나라 최초의 제야의 종이 있는 사나사도 양평에 위치했다.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하는 세계 10대 교회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원형교회), 한국의 아름다운 5대 교회(청란교회)도 모두 양평이 품고 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직후 일어난 양평은 을미의병의 시초가 된 땅이기도 하다. 유명 TV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마지막 장면 중 하나인 의병 사열 모습을 이곳에서 찍은 이유가 있다. 황순원 선생의 소설 ‘소나기’의 배경도 양평이다.
이처럼 주민들도 잘 모르는 양평군의 역사ㆍ문화ㆍ인물ㆍ설화 등 스토리텔링을 통해 소속감을 키우고, 양평의 자랑을 일깨우는 게 바로 ‘양평살이’다. 새로 전입한 주민들을 위해 양평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나름 준비했지만 막연히 양평을 찾은 이들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주변 환경부터 공공 및 편익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공공 및 복지서비스는 무엇이고 어떻게 지원되는지, 가 볼 만한 곳과 맛집, 군청 전화번호까지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양평살이’ 설명회는 양평역사문화연구회가 담당한다. 회원이자 연구회 창설 멤버인 박한철(63) 활동가는 “양평에 정착한 분들에게 양평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해 주며 양평에 잘 왔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고 있다”며 “인구유입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박 활동가도 11년 전 연고 없는 양평으로 이사 와 거주하는 이주민이다.
청년작가 전시공간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1리 마을 입구에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다른 분위기의 건물이 하나 있다. 폐가였던 집을 청년 작가들이 들어와 리모델링해 만든 작은 전시공간이다.
코로나19로 만남의 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문화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 청년 작가들의 창작활동도 사실상 중단됐다. 그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양평 이음창작소다. 행정안전부와 양평군 매칭 사업의 일환인 ‘마을공방육성사업’ 지원을 통해서다.
이음창작소 도연희(28) 대표 등 청년 작가들이 이곳에 정착한 이유는 빌딩 숲이 아닌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로움을 느끼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과 잎으로 만든 천연염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주민들의 삶을 이야기 삼아 시로 표현했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4계절 양평의 모습을 담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사부작사부작’이다. 도 대표는 이음창작소를 법인으로 등록했다.
청년 작가들은 마을 주민들의 삶을 시로 표현해 작은 미술전시회를 열고, 주민들과 함께 그림도 그렸다. 처음 5, 6명이 상주하던 청년 작가도 3년 새 12명으로 늘었고, 주말농장에 참여하는 인원도 10명이나 된다. 서울 등 타지에 사는 손주들이 자주 내려와 활력을 되찾고 있다고 마을 주민들말한다. 이한규 오빈1리 이장은 “처음 청년 작가들이 왔을 때 잠시 머물다 가나 보다 했는데 이곳에 머물며 우리 얘기를 들으니 좋다”면서 “젊은 친구들이 자주 오니 활력도 넘치고 최근 몇 년 새 외지로 나간다는 주민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청포도시'에서 청년 유입
강원도 홍천군과 경계이자 양평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청운면. 청운면은 양평에서도 ‘청포도시(청년이 포기한 도시)’로 불린다. 청운면 인구 3,800명 중 39세 이하 청년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양평군 전체 26%보다도 크게 낮다.
하지만 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작은 목공소 ‘상상공작소’의 주인은 40대 김용필 대표와 39세 이하 청년 6명 등 11명이다.
이들은 2021년 9월 산림청으로부터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인가를 받았다. 양평의 산과 물, 나무 등 산림자원을 통해 일자리도 만들고, 지역 주민과 소통하자는 차원에서 설립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사회적 공동체를 통해 봉사활동으로 시작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외지로 나가는 것보다 공동체에 남는 것을 원해 모임을 시작했다”며 “이들과 함께 자립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작한 게 바로 상상공작소”라고 했다. 청년 목수 오대규(28)씨는 “돈보다 ‘같이’의 가치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양평에 남았다”며 “여기처럼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겨야 청년들이 유입될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상상공작소가 처음부터 청년을 모으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목공 기술을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점차 심화과정이 생기고 기술 습득에 따른 작품 판매까지 이어지면서 지난해 1월부터는 매출이 발생했다. 매출 증가로 지난해 2명, 올해 4명 등 모두 6명의 일자리가 늘었다. 6명은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다. 양평군 전체로 소문나기 시작해 최근 청년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상상공작소의 도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청운면으로 귀촌한 청년 12명과 함께 청운네트워크를 만들어 청년 유입에 힘쓰고 있다. 청운에서 한달살이, 반년살이, 일년살이, 평생살이 등 다양한 아이템을 통해 10년 안에 100명의 청년을 모으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를 위해 9월 2일 청운면과 단월면 청소년만을 위한 축제를 연다. 청년 모으기의 시작점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9월 2일 청운면에서는 가장 크고 활기찬 청소년 축제가 열린다”며 “양평군을 더 이상 낙후된 시골마을이 아닌 자연이 있고, 청년이 있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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