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중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군 검찰은 박 대령이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지시를 어기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명예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지역군사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 및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 법원이 현역 군인을 상대로 한 구속 영장을 이례적으로 기각한 건 그만큼 군 검찰의 영장 청구가 무리수였다는 걸 보여준다. 애초에 구명조끼도 없이 호우 피해자 수색을 지시한 군 지휘부의 책임을 수사팀이 묻는 건 당연한 것인데 이를 마치 쿠데타라도 모의한 것처럼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몰아간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군 검찰의 행보가 박 대령이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통화 내용 등을 공개하며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뒤 급물살을 탄 점을 감안하면 입막음용 영장 청구였을 가능성과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박 대령은 외압 의혹 근거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발언을 제시했고 김 사령관과 대통령실은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해군 검찰단 소속 검사가 국방부가 초동 조사를 무효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는 녹음 파일까지 공개되며 진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채 상병이 순직한 지 달포가 지났지만 어느새 사건은 본말이 뒤바뀐 채 진상 규명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박 대령도 영장 기각 뒤 채 상병의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스로 밝힌 대로 수사에 성실히 임하는 게 의무다.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정치화하는 건 오히려 순수성에 대한 의심만 살 뿐이다. 외압 의혹이 있었는지 아니면 박 대령의 오해인지 풀기 위해선 이제 이 장관의 해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밝혀 사건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걸 막는 게 고위 공무원이자 참군인의 자세다. 더 이상 젊은 장병들이 복무 중 어이없는 일로 순직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그나마 채 상병에게 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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