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사-유통사 협업 상품·자사몰 PB상품도 출시
특정 채널 의존도↓…특화 상품으로 고객충성도↑
야쿠르트 제조업체에서 난데없이 화장품을, 그것도 36만 원짜리 고가의 상품을 내놓았다. 유통종합기업 hy가 5월 프레딧몰을 통해 선보인 자체브랜드(PB) 화장품 'NK7714 하이퍼 부스팅 앰플' 얘기다. 해당 상품은 hy가 자체 개발한 화장품 원료 '피부유산균7714'로 만들었다고 홍보하면서 13일 기준 약 3만 개가 팔렸다. 적은 용량에 고가인 점을 고려하면 제법 눈에 띄는 성과다.
대형 식품사들이 유통사와 손잡거나 자사몰을 통해 PB 상품을 선보이는 등 특정 채널에서만 구할 수 있는 단독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유통 채널별로 소비자 성향과 취급 상품 등을 분석해 맞춤형 상품으로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소품종 대량 생산 방식이 통했던 과거와 달리 온라인 장보기로 구매 채널이 다양해진 지금은 각 채널 성격에 따라 소량 생산으로 고객 취향을 맞추는 게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채널마다 고객 성향 달라"…채널별 '고객 입맛 맞추기' 특명
지난달 CJ제일제당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컬리를 통해 선보인 단독상품 '골든퀸쌀밥'은 출시 3주일 만에 초도물량 7,000세트(6개입)가 다 팔렸다. 이 상품은 2차 물량을 만든 뒤 구매에 탄력이 붙어 13일 기준 1만2,000여 세트가 팔렸고 컬리에서 판매 중인 110여 개 즉석밥 중 매출 상위 5위까지 올라왔다.
CJ제일제당이 컬리와 손잡은 이유는 프리미엄 상품인 골든퀸쌀밥을 구매할 소비층이 컬리에 집중돼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과거엔 대형마트, 편의점마다 고객의 구매 패턴과 소비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유통 채널마다 제각각이라 채널 성격을 고려해 맞춤형 상품을 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이유로 이 회사는 신세계와도 손을 잡았다. 지난달 17일 신세계 유통 3사(이마트·SSG닷컴·G마켓)를 통해 비비고 납작교자, 햇반 컵반 등 신제품 13종을 선보였다. 연말에는 신세계 유통 3사와 공동 개발하는 혁신 상품도 출시한다.
또 하이트진로는 인터파크커머스와 손잡고 PB상품인 '아이팝(I*POP) 먹는샘물'을 7월 출시했다. 하이트진로가 생산하면 인터파크쇼핑, 티몬, 위메프 등 큐텐 계열사에서만 상품을 살 수 있다.
특정 채널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으로 고객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게 이들의 전략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사는 유통사를 통해 단독 상품을 내면서 고객의 소비 패턴 등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새 제품을 낼 때 일종의 테스트도 가능해진다"며 "유통사는 그곳에서만 파는 단독 상품으로 록인(lock-in)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경쟁 심화…유통채널 확보 더 중요해졌다
한편에선 자사몰을 통해 유통사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도 이어진다. KGC인삼공사는 최근 정관장몰을 통해 PB상품인 '정몰초이스 글루타치온'을 출시했다. 9월 기준 회원 수 100만 명, 지난해 매출 346억 원으로 이용자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판단에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단독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회원 수 160만 명에 달하는 hy도 화장품 외에 유기농 두유 등 PB상품의 품목 수를 늘리고 있다. 자사몰 충성 고객 수를 키워 입점 수수료 없이 높은 마진으로 수익을 거두고 유통사로서 힘을 키우겠다는 목표다.
이 같은 변화엔 대형 식품사의 브랜드 파워가 예전 같지 않다는 위기의식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대형마트와 쿠팡 등에서 운영하는 PB브랜드가 성장하면서 PB브랜드를 만드는 중소제조사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쿠팡에 따르면 업계 1위 쿠팡에서 곰곰 등 PB 상품을 만드는 중소제조사 비중은 90%에 달하는데 지난 1년 동안 이들의 매출은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식품산업이 성장하면서 품질이 좋은 대체 먹거리가 많아졌다는 점도 대형 식품사엔 좋지 않은 신호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PB상품 구매 활성화로 고객이 상품 브랜드가 아닌 유통사를 믿게 되면서 중소기업 상품도 큰 고민 없이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유통사의 힘이 커지면서 시장을 지배하던 대형 식품사도 브랜드 인지도만 가지고 장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며 "채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예전처럼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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