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비 새는 날의 연속이었다. 물 새는 자취방은 뉴스 속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2022년부터 폭우를 견디지 못한 내 자취방엔 물이 새기 시작했고, 올 들어서는 조금만 비가 세게 와도 바로 물이 새기 시작한다. 사실 이 모든 게 내 잘못이다. 하필 봄에 집을 보고 다녀서 “장마철에 물이 새나요?”라는 질문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놀라서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 보니, 천장 방수 공사는 했으나 건물이 낡아서 한계가 있다고 한다. 윗집과 윗윗집에 가보니 나랑 똑같은 곳에 물이 새고 있더라. 나보다 한 살 많은 1990년생 건물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매수가 아니라 임차했다는 사실이 나를 두 번째로 위로했고, 같은 라인 중 그나마 우리 집이 물이 덜 샌다는 사실이 내 마음의 디저트가 됐다.
청년 주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기시감이 드는 현장이 있어 고발하고자 이야기했다. 바로 교육 현장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201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교직은 정말 인기 많은 직장이었다. 명문대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교대에 가는 친구들도 많았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두고 교육대학교 혹은 사범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했고 참으로 현명한 결정이라는 칭찬도 많았다.
그런데 그 인재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비명을 지르다 못해 비명횡사하고 있다. 이유는 인구 절벽도, 박봉도 아니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교사의 노동권 그리고 학부모 갑질 때문이다. 한두 해의 이야기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있던 문제다. 다만 항상 미봉책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조용히 덮다 보니 이렇게 됐다.
누수가 심해지면 벽지에 얼룩이 생기고 곰팡이가 자란다. 아무리 제습기를 켜고, 심지어 벽지를 바꿔도 잠깐이다. 결국은 건물 자체를 수리해야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이미 망가진 교사의 노동권은 잠깐의 언론 조명과 가해 학부모 검거만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몇몇 대책이 나왔다. 앞으로 교장 직속 대응팀이 학부모 민원을 관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는 부족하다. 교장 직속 대응팀은 교장이 아니고, 또다시 현직 교원일 수밖에 없다. 교장이 직접 대응해야 하고, 불합리한 민원은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바깥의 사건도 교원이 관리하게 하는 학교폭력법도 수정되어야 한다. 교사의 훈육마저 고소의 근거가 되는 아동학대법은 물론이다.
너무 과감하다고?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고? 이미 수많은 전문가가 제시한 방안이다. 학부모의 악마화라고? 교사의 생존 및 노동권을 위한 것이며 학부모를 공격하는 정책은 일절 없다. 그간 학교에 아웃소싱하여 생긴 학부모의 책임 방기를 막을 수 있는 정상화 대책이다.
지난 9월 4일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였다. 난 더 이상 내 동생과 친구 그리고 형과 누나뻘인 교사들이 일하다가 죽지 않기 바란다. 목숨 걸고 공부해서 들어간 일터에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없으면 한다. 비가 새는 자취방은 임차 계약이 끝나면 나갈 수 있지만 일터는 쉽게 버릴 수 없다. 교육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한다. 나라의 기틀인 교육에 곰팡이가 슬어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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