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꽃박사가 되면 어떻겠니?"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을 공부하길 권유하는 지도 교수님의 표현이었다. "학과에 하나뿐인 여학생이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 인생의 빛깔이 초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표현으로 반감을 살 수 있다. 더욱이 식물을 공부하는 학문은 생리학, 생태학, 분류학, 생명공학 등으로 구체화 되는데, 특히 꽃을 공부한다면 '화훼학'에 가까울 테니 학문적인 표현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이 다소 부적절한 표현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식물분류학을 공부하게 됐고, 평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을 만나며 살고 있다. 결과적으론 감사하고 행복하다.
꽃이란 무엇일까? 식물학에서의 정의는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밑씨가 씨방 속에 자리한 식물에게 존재하며, 암술과 수술, 꽃잎과 꽃받침(분화되지 않거나 퇴화하기도 한다) 등 구조를 갖추었을 때 꽃이라고 한다. 소나무 같은 겉씨식물의 경우는 광의로 꽃이라 부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식물학적 꽃(flower)을 가지지 않는다.
꽃은 벌과 나비 등 수분을 도와주는 매개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갖가지 모양과 색깔, 향기, 꿀을 만들어 낸다. 그 무한한 다양함과 눈부신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움직여 삶에 깊이 관여한다. 사랑을 표현할 때, 탄생과 죽음을 기억할 때, 신을 포함해 존경의 마음을 전할 때 언제나 함께하며 인생을 혹은 역사를 바꾼다. 때론 더 화려하고 풍성한 꽃을 만들기 위한 개량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본래 꽃의 존재 이유였던 씨앗을 맺는 기능이 사라지기도 한다.
평생 식물을 공부하며 산과 들을 헤매고, 수목원과 정원에서 심고 가꾸는 일에 관여하지만 여전히 꽃은 나를 설레게 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며 때론 격정적인 감동을 끌어낸다. 급기야 많은 이들과 함께 초록 세상의 행복과 의미를 공유하고 싶어진다. 생명과의 공존, 그것은 눈길을 끌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온 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시선을 점차 잎새들의 변화무쌍함, 열매들의 다채로움으로 넓혀 나가길 권한다.
도시에 살아 꽃들과 만나기 어렵다고? 가로화단의 배롱나무, 꽃댕강나무, 무궁화가 아니더라도 바랭이, 강아지풀, 박주가리. 새팥, 달맞이꽃… 오늘 아침 출근길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만난 꽃들이다. 지금 만나러 가자. 여러분 곁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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