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군과 중앙정부의 정반대 정책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계절노동자 10명 중 1명은 ‘도망’간다. 5개월(최대 8개월까지 연장) 계절 근로 비자로 들어와서 농촌 일손이 바쁜 농번기에 일하는데, 중간에 잠적하는 식이다. 농가는 갑자기 일손이 ‘펑크’나서 손해를 보고, 사회엔 미등록 체류자(불법체류자)가 늘어나 부담이 따른다.
□ 그런데 계절노동자가 전혀 이탈하지 않은 곳이 있다. 강원 홍천군은 지난해 계절노동자 548명을 데려왔는데 이탈자가 0명(나라살림연구소 자료)이었다. 필리핀 산후안시와 협력해 브로커 개입 없이 직접 선발하고, 결혼이민자의 친척 위주로 뽑아 신원보증도 확실하다. 또한 노동자에게 한국어·문화 교육을 지원하고, 민원이 발생하면 운전자와 농가·근로자 소통 담당자가 3명 1조로 출동해 해결해 준다. ‘의료공제회’를 만들어 노동자의 의료비도 지원한다. 경북 상주시(449명)와 포항시(228명), 충남 보령시(205명)와 금산군(183명) 등도 계절노동자 이탈이 0명이었다.
□ 반면 강원 인제군은 지난해 계절노동자 336명 중 300명이 이탈했다. 전북 고창군도 306명 중 207명이 이탈했다. 전국 이탈자는 1,151명으로 그 비율이 9.6%이다. 무더기 이탈의 배경엔 브로커 개입이 많다. 브로커가 현지 노동자에게 접근해 심사가 허술한 지역의 계절노동자로 들어오게 한다. 노동자는 브로커 수수료로 농촌 일손 수입의 절반 이상을 줘야 해서, 더 큰돈을 벌기 위해 건설 현장 등으로 이탈하는 것이다.
□ 홍천군과 같은 ‘이탈 없는 지역’의 존재는 외국인 노동자 이탈이 개인이 아닌 구조 문제임을 증명한다. 누구도 살기 좋은 여건에선 도망가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에 20년 된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 예산을 전액 없애고 폐쇄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44곳의 센터가 문을 닫는다. 노동자들이 아플 때, 임금을 받지 못했을 때,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도움을 받던 곳이다. 홍천군과 같은 작은 지자체도 앞으로 가는데, 중앙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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