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 논란]
교육계·국회 "법 개정해야"
①법 바꿔야 아동학대 신고 억제
②처벌법 생긴 후 신고 급증
아동단체·학계·정부 "법 개정 안 돼"
①아동 보호 원칙 훼손, 인권 후퇴
②'교권 회복 4법'이 교사 보호
"지난 9년간 1만1,600여 명의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습니다.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에 ‘교사의 생활지도는 아동학대가 아니다’라는 조항을 넣어야 학부모들이 아동학대 신고를 자제할 겁니다.” (김민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권상담국장)
“수사기관의 아동학대 판단 비율은 높지 않지만 교사에 의한 정서적 학대로 판단된 사례가 분명히 있습니다. 정서적 학대는 예방과 금지의 대상이지, 특정 직군의 면책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선례가 생기면 법이 무력화돼 아동 보호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정선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사들의 잇단 죽음 이후 교권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이 속도를 내고 있다. '교권 회복 4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이 지난 21일 국회를 통과했고, 아동복지법 개정안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에서 20일 첫 심사가 열렸다. 두 법 모두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사회적 저항 없이 통과된 교권 4법과 달리,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각계각층의 의견이 엇갈린다. 학계와 정부는 법 개정에 우려를 표하는 반면 교원단체는 교권 보호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사·국회 "아동복지법 바꿔야 부모 신고 막는다"
교원단체들은 교권 보호를 위해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교사들은 해당 법을 개정해야 학부모의 무분별한 학대 신고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아동복지법은 "누구라도 아동을 성·신체·정신적으로 학대해선 안 된다"고 규정(제17조 금지행위)하고 있는데, 여기에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가 아니다"라는 단서 조항을 신설해 교권을 보호하자는 얘기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교권본부장은 “아동복지법을 바꿔야 학부모의 신고를 막는 실질적인 제어 효과가 생기고, 신고당한 교사들도 혼자 싸우지 않고 법의 보호를 두텁게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이후 학부모의 정서 학대 신고가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이 법 제정 후 지난 9년간 유·초·중·고 교직원 1만1,626명이 아동학대로 신고당했지만 이 중 기소된 사람은 1.6%뿐이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정당한 생활지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신고로 피해를 봤다는 얘기다.
김민석 전교조 교원상담국장은 “가정 내 심각한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아동학대처벌법이 학교에 적용되면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며 “교권 4법만으로는 미봉책이고 학부모에게 신고라는 무기를 쥐어준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교원단체들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아동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잇단 교사 사망으로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국회 복지위 여야 간사(강기윤 국민의힘 의원·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각각 지난 7일과 12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일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이 법안을 심사하는 등 논의 속도도 빠르다.
학계·정부 "아동인권 후퇴...교권 4법이 교사 보호"
반면 아동 복지 단체와 학계 등에서는 아동 인권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한국아동복지학회 등 복지 관련 단체 15곳은 지난 19일 "교사의 권리 보장이 아동 권리를 침해한다면 교육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사회 전반적 인권 보호 체계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학계도 특정 직군에 면책권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규정에 교사 면책 규정을 두면 예외 없이 아동학대를 막자는 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아동복지법을 통해 아동학대를 근절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교사들의 면책권을 넣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말했다. 정선욱 교수는 "교사의 생활지도에 아동학대 면책 조항을 넣으면 아동 관련 일을 하는 모든 직군이 ‘우리도 제외시켜 달라’고 하게 돼 법이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서적 학대는 후유증이 매우 심각한 데 비해 이를 발견하거나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무조건 면책하는 것은 학대 우려가 큰 아동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권 4법 개정으로 아동복지법 개정 필요성이 적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최근 국회에 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 검토' 의견을 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교권 4법으로 이미 입법 목적과 취지가 이뤄졌기 때문에 아동복지법에 같은 내용을 넣는 것은 실익이 없다”며 “아동 보호를 위한 법에 개별 직군을 제외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도 입법 체계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계와 학계 등 관련 단체가 모여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 학교 현장의 누적된 문제는 법으로만 풀 문제가 아니다”라며 “법 개정을 비롯해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려면 교사단체, 아동청소년단체, 학계, 학부모단체 등이 연석회의 등을 구성해 토론하고 의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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