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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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세출법안이 의회를 제때 통과하지 못할 듯 보인다. 10월 1일에 회계연도가 시작하니 이번 주말이 데드라인인데, 하원 공화당이 내분에 휩싸여 아무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 몇 주 동안 연방정부가 문을 닫는 사태('셧다운'이라고 부름)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출법안(appropriations bill)은 정책별로 12개의 법안이 각각 하원과 상원을 통과하는 방식이 원칙이다. 그런데 정당양극화 상황에서 정당 지도부의 힘이 강했던 지난 몇 십 년 동안은 12개의 법안을 몇 개씩 합쳐서(완전히 하나로 합치는 '옴니버스'와 대비해 '미니버스'라고 부름) 하원의장 주도로 일괄처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주로 이념적으로 온건한 의원들의 이해관계와 지역구 이익을 더 많이 반영시켜 줬는데, 이들이 다수당 주도의 당론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정반대로 프리덤 코커스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 극우분파가 딴지를 걸고 있다. 하원의장 주도의 미니버스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쉬운 12개 개별 법안 통과 방식을 요구했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이를 들어줬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애초 백악관과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예산삭감을 원하고 있고, 세출법안이 제때 통과 못할 경우 사용하는 임시예산안(continuing resolution)도 결사반대 중이다.
행동으로도 나섰다. 지난주 국방부와 국토안전부에 대한 세출법안을 하원 본회의에 상정해서 그 내용과 규모를 손볼 예정이었는데, 5명의 공화당 극우분파 의원들이 두 번이나 상정 자체에 반대표를 던졌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석 차이가 불과 4석인 하원은 올스톱 상태가 되었다. 하원의장의 '령'이 서지 않을 정도로 공화당 내분이 심각한 것이다.
끝이 아니다. 자신들이 반대하고 있는 임시예산안을 민주당과 합의하여 통과시키면 하원의장을 불신임하고 재선출 투표를 시도하겠다고 협박한다. 공화당 의원들의 표만으로 예산을 크게 삭감하자고 생떼를 부리는 것인데, 내년 선거를 위해 지역구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온건파 의원들은 속이 까맣게 타고 있다. 하원의장 당선과정에서 극우분파에 크게 당한 경험이 있는 매카시 의장도 난감하기 그지없다.
뚜렷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최근 2018년 연방정부 셧다운은 역사상 최장인 34일 동안 이어졌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여러모로 불리하게 작용했었다. 올해도 비슷하리라는 전망이 다수인데 앞으로 몇 주간이 큰 분수령이 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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