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결국 부결됐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정기승 후보자 부결 이후 35년 만으로, 헌정 사상 두 번째 낙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없던 당시엔 공석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이번엔 사법 공백이 상당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어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출석 의원 29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임명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가결 요건이다. 본회의 직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각각 ‘가결’과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과반 의석(168석)의 민주당이 완승했다. 6석의 정의당도 가세했다.
대통령실은 부결 직후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사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을 한다”는 격한 발언도 내놓았다.
양극단의 여야, 정략적 계산 등 정치 실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후보자는 사법부 수장이자 사법 정의의 수호자인 대법원장 자리에 걸맞지 않은 많은 흠결을 드러냈다. 10억 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 재산신고 누락, 농지법을 위반한 땅 투기 의혹, 아들의 대형로펌 인턴 특혜 채용 의혹 등이 줄을 이었다. 그간 판결에서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나하나가 대법원장 부적격 사유에 해당할 만큼 중대하지만 대통령실 인사 검증에서는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법 위반 쟁점에 대해 “몰랐다” “인식하지 못했다” 등의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법을 몰랐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판사에게 어떻게 6년 동안 사법부를 맡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이라니 국민들로선 수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로 벌써 열흘 넘게 대법원장 자리는 공석이다. 새 후보자를 찾고 다시 청문회를 거치려면 공백이 얼마나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안철상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고 있지만 권한 행사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장기화 시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요 사건을 다루는 전원합의체 재판은 현실적으로 열리기 쉽지 않고, 내년 1월 1일 자로 만료되는 2명의 대법관 후임 제청을 비롯한 인사 차질도 불가피하다.
서로 책임 공방만 벌이며 공백 장기화를 방치해선 안 된다. 대통령실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하루빨리 적임자를 새 후보자로 지명해야 한다. 민주당도 다수 의석을 무기로 대법원장 임명동의를 정쟁 볼모로 삼았다는 지적을 씻기 위해서라도 인사청문회 일정 등에 적극 협조하길 바란다. 사법 공백에 따른 재판 지연 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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