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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뜻하는 ‘눈 깜짝할 사이’는 실제로 몇 초일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눈꺼풀이 한 번 내려왔다 올라가는 데엔 0.1~0.3초 걸린다. 사실 이 정도 시간도 우린 거의 인식하지 못하면서 산다. 비슷한 뜻으로 ‘찰나’라는 말도 있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크샤나’에서 음을 따와 한자로 표기한 용어다. 찰나는 몇 초나 될까. 불교 경전에 따르면 하루는 648만 찰나다. 계산하면 0.013초 정도 된다. 눈 깜짝할 사이의 10분의 1도 안 된다.
□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피에르 아고스티니(미국) 페렌츠 크라우스(독일) 안 륄리에(스웨덴) 교수는 이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을 다루는 아토초(attosecond) 과학의 선구자들이다. 아토초는 100경분의 1초다. 아토는 덴마크어로 18을 뜻하는데, 100경이 10의 18승이어서 이런 접두사를 붙였다. 다른 말로 하면 1초를 10억분의 1로 나눈 뒤 이를 다시 10억분의 1로 쪼갠 시간이다. 그래도 감이 안 온다. 빛이 물 분자의 지름(0.3나노미터)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란 설명을 들어도 머리만 아프다. 인간은 도저히 인식할 수 없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시간인 셈이다.
□ 시간을 이처럼 짧게 나눠 연구하는 이유는 이 정도는 돼야 원자와 전자의 운동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핵 주위를 극고속으로 공전하는 전자는 아토초 단위로 사진 촬영하듯 포착하고 분석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계의 원리와 우주의 비밀을 풀면 언젠간 전자를 조립 분해하는 게 가능해질 수도 있다.
□ 아토초와 비교하면 '눈 깜짝할 사이'나 '찰나'는 무한대나 영겁에 가까울 정도로 정말 긴 시간이다. 그래서 불교에선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순간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다. 찰나가 곧 영겁인데 낭비할 순 없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홍콩 영화 '영웅본색'의 배우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매 순간 '현재'를 살면서 지금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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