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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스페인 문학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세계 문학사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돈키호테’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민병대에 학살당한 민중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가 스페인 출신 작가다. 무엇보다 16세기 유럽 문학을 뒤흔들었던 ‘피카레스크(picaresque) 소설’이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1554년 출간된 작자 미상의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라는 작품이 시초로 알려진다.
□고전 소설에서 가장 흔한 플롯은 선악 이분법적 대립 구도다. 그런데 피카레스크는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악인들이 주인공이다. 용어도 스페인어로 악당을 뜻하는 ‘피카로(picaro)’에서 나왔다. 악인끼리 대립하고 싸우니 누가 이겨도 선이 설 자리는 없다. 그래서 악당 소설로 통칭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풍자문학이다. 하층민의 눈을 통해 주류계층이나 상층민들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비웃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요즘 말 많은 TV 드라마가 SBS ‘7인의 탈출’이다. 6회까지 방영된 현재 시청률은 아직 7%대에 불과한데, 화제성만큼은 최고다.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역대급 막장 드라마여서다. 홈페이지를 보니 기획 의도를 ‘소녀의 실종에 연루된 7명 악인의 생존 투쟁과 그들을 향한 피의 응징을 그린 피카레스크 복수극’이라 적고 있다. 악인 주인공 7명이 서로 물고 뜯는 드라마라는 얘기일 것이다. 작가는 임성한과 막장계 쌍두마차인 김순옥이다.
□’순옥적 허용’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개연성 따위는 ‘1’도 필요 없고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문제없다는 뜻이다. “김순옥이니까 괜찮아”다. 비판인지 칭찬인지 모를 일이다. 유튜브에서 하이라이트 장면만 몇 분 봤을 뿐인데도, 황당한 설정과 시도 때도 없이 질러대는 고함에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왜 ‘허용’하느냐고, 도대체 뭘 풍자하느냐고 따져 물을 생각은 없다. 다만, 현실 정치에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벌어지고 있는 피카레스크마저도 너그럽게 '허용'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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