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 선거 패배는 신뢰의 위기
공정과 상식 대통령 초심 보여야
일방 대신 대화와 타협에 무게 두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지난 대선 때 힘을 합쳐서 국정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하는 정말 아찔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정기국회를 앞두고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한 말이다. 소속 정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얘기라 하더라도 센 발언이기는 하다. 윤 대통령은 가치, 반국가세력을 얘기하면서 올 들어 이념적 색채를 꽤 드러냈다. 여전히 전 정권과의 차별화가 현 정부의 성과보다는 이념적, 정책적 비난이나 흠집 뒤지기에 치중해 있다. 그렇다고 민심에 먹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랜 기간 30%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만 봐도 그렇다. 진영 싸움에 지친 일반 국민으로서는 대통령의 이념 전쟁 역시 또 하나의 피로도를 쌓는 사례로 여길 듯하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커녕 악화하는 마당에 우선순위에 둘 일인가 싶다. 실책을 거듭하는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이 하나 없고, 일방적인 임명 강행이 계속되고 있으니 국민 보기에 ‘뭐지’ 싶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의 마이웨이 압권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의 사면과 보궐선거 재공천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 3개월 만에 이뤄진 사면은 국민 통합을 내세웠지만 봐줄 사람 봐준 거라는 걸 국민이 모를 바가 아니다. 기껏 서울의 구청장 선거 패배 하나에 국민의힘이 크게 흔들리는 배경도 결국 대통령 때문 아니겠는가. 애초 당헌 당규 때문에 무공천에 무게를 두던 국민의힘이 온갖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공천으로 결정한 데는 대통령 의중을 살피지 않은 다음에야 그럴 이유가 없다. 피고인 이재명 대표가 여전히 건재한 민주당과의 대결에서 무려 17%포인트나 뒤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보수진영의 우려 역시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다. 대통령 당선 후 공정과 상식, 통합의 기치를 높이 들었으나 이번 선거 과정만 봐도 그 가치가 훼손된 소리가 크게 들린다. 윤석열 정부가 당면한 건 신뢰의 위기다.
선거 참패에 대한 당 지도부 책임론 근저엔 왜 대통령에게 할 말을 제대로 못 하느냐는 것이다. 과거의 청와대 2중대니, 대통령실 출장사무소니 하는 얘기가 당 내부에서 분출하는 것도 이 관계 구조로는 6개월 뒤 총선이 암담하다는 위기감이다. 김기현 당대표가 건강한 당정대 관계, 민심 사안에 대한 당의 주도적 역할을 얘기한 것도 당내 불만의 반영이겠다. 물론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고 전달할지에 대해 김 대표의 역량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수용 의지가 중요하다. 당만큼 민심에 예민한 조직도 없다.
광역단체 17곳 중 12곳을 휩쓸었던 지난해 지방선거 대승은 정부 출범 22일 만에 치러진 선거였던 만큼 국민의 큰 기대가 반영됐다. 이젠 국민이 기대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게 하는 시기다. 무엇 하나 매끄러운 게 없는 국정 난맥상을 두고 윤석열 정부는 거대 야당 탓을 할지 모르겠다. 그 핸디캡조차 돌파하는 게 정부 능력이다. 예컨대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 정부만큼 야당 포용에 인색한 예가 있는지 모르겠다. 영수 회담은 아니라 하더라도 여야 지도부 회동도 한번쯤 가질 만한데 내내 뒷짐이다. 잘못된 신호를 줄까 싶어 저어하는지 알 수 없으나 피고인은 피고인이고, 당대표는 당대표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대화도, 설득도, 소통도 부족하다. 이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아슬아슬하다고 여기는 이가 야권 인사만은 아니다.
경제는 신용에 기반하고, 정치는 국민 신뢰에 기반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우리의 정치체제에서 어느 대통령이나 권력에 의존하고, 취하기 쉽다. 총선이 문제가 아니라 퇴임 후 권력을 누린 걸로 기억될지, 신뢰를 누린 걸로 기억될지는 윤 대통령 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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