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명 사망”... 개전 열흘 만에 최악 전쟁범죄
지역 의료시설 포화 상태... 시신들, 계속 쌓여
이스라엘, 책임론 반박... “팔 무장단체 실수 탓”
항공 영상 분석·하마스 대화 감청 음성도 공개
팔 “나흘 전 병원에 경고 포격”... 이 공격 정황
누구 소행이든 국제법 위반 “심각한 전쟁범죄”
개전 열흘 만에 최악의 전쟁범죄가 일어났다. 17일 저녁(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이 발생한 곳은 ‘병원’이었다. 일반 환자들은 물론,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양측 간 무력 충돌 과정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곳이었다. 병원은 국제법상 전쟁 중 공격도 금지돼 있어,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여겨진다.
특히 13일 이스라엘군(IDF)의 대피령 이후, 당장 피란을 떠나긴 힘들었던 이들도 병원에 몰려든 것으로 알려져 유독 인명 피해가 컸다. 사상자는 대부분 여성, 어린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퍼붓는 이스라엘군 보복 공습을 병원에선 피할 것으로 생각했던 믿음이 산산조각 난 셈이다.
정확한 폭발 원인, 이에 앞서 병원을 타격한 로켓 등의 발사 주체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상대방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책임 공방만 벌이고 있다. 어떤 경우든 민간인 희생엔 아랑곳없이 전개된 이번 전쟁은 최악 상황으로 치달았다. ‘피의 악순환’ 우려도 더욱 커졌다.
사방에 시신·복도서 긴급 수술... 병원, 아비규환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와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쯤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어딘가에서 발사된 로켓이나 미사일의 타격에 따른 2차 폭발로 추정된다. 환자 병실과 수술실 등 주요 시설들이 무너졌고, 건물도 큰 화염에 휩싸였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된 시신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의료봉사 중이었던 영국 출신 외과의사 가산 시타는 BBC에 “수술 도중 천장이 무너져 대피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병상이 부족했다. 인근 알시파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만 300명 이상이었다. 가자지구 병원들 복도는 부상자들의 피와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의료진은 야외나 복도에서 긴급 수술을 집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병원 밖엔 대기 중 숨진 이들의 시신이 흰 천에 싸인 채 무더기로 쌓였다”고 보도했다.
사망자는 수백 명이다. 가자지구 민방위는 목숨을 잃은 이가 약 300명이라고 밝혔고, 보건부는 “500명 이상”이라고 발표했다가 이후 471명이라고 정정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 깔린 사람과 중상자를 고려하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쉬라프 알쿠드라 팔레스타인 보건부 대변인은 “의료진 역량을 뛰어넘는 사상자 규모”라고 말했다.
“병원 발전 시설 오인 파괴” vs “가자 지구서 로켓 오발”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참사 책임을 서로에 떠넘겼다. 자신들은 병원 폭발을 일으킨 로켓 또는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팔레스타인 당국과 하마스는 IDF의 열추적미사일이 팔레스타인 측 로켓 발사대뿐 아니라, 병원 내 발전 시설도 오인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CNN방송은 가자지구 관리들이 “14일 알아흘리 병원에 이스라엘의 포탄 두 발이 떨어졌다. 당시 IDF 측이 ‘왜 대피하지 않았느냐’라며 경고 사격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실제로) 14일 병원 의료진 4명이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병원 공격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이슬라믹지하드’의 로켓 오발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다니엘 하가리 IDF 대변인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지하드가 잘못 쏜 로켓이 폭발 원인”이라며 “항공 영상 분석 결과 병원 자체에 직접적 타격은 없었고 외부 주차장만 불탔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이스라엘 공군이 그 지역에서 작전을 했지만, 현장 영상과는 다른 무기를 썼다”고 설명했다. 또 “미사일 파편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쪽 지역(이슬라믹지하드)의 것 같다” “오발로 떨어졌다더라” 등 발언이 담긴 하마스 대원 간 대화 감청 음성도 공개했다.
‘최후’의 안전지대 때린 ‘최악’의 전쟁범죄
누구의 말이 맞든, 결론은 이번 폭발이 엄연한 ‘전쟁범죄’라는 점이다. 국제인도법 대원칙인 제네바협약은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살상 △의료시설 공격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서도 병원 폭격 사례는 빈번했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인명피해가 단발 공격으로 발생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알아흘리 아랍 병원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향하는 물, 전기, 의약품을 봉쇄한 가운데 인명 구호에 전력을 다했던 곳이다. IDF가 가자지구 북부 주민 110만 명에게 대피령을 내리고 공습을 강화한 뒤, 갈 곳을 잃은 여성과 노인, 어린이의 피란처 역할도 했다. 이 병원에서 근무한 한 의사는 “약 4,000명의 실향민이 머물고 있었다”고 BBC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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