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같은 학년에는 소아마비를 앓은 친구가 4명이나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전교 어린이 회장이었는데, 그의 으리으리한 집에 놀러 가 난생처음으로 라면이라는 것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부유한 집에서도 피하거나 치료할 수 없었던, 아동의 사지를 마비시키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전염병이 바로 소아마비다.
1980년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소아마비에 걸리는 사람은 한 해 35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 소아마비 발병건수는 9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소아마비가 천연두에 이어 인류가 퇴치한 두 번째 인간 질병이 될 거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성공에는 로터리와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 미국질병통제센터, 게이츠재단 등이 주도하는 '소아마비 퇴치를 위한 글로벌 이니셔티브(GPEI)'의 역할이 컸다. 이들 단체는 1988년 이후 지금까지 25억 달러 이상을 들여 전 세계 30억 명 이상의 아동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했다. 백신 연구와 바이러스 감시 및 추적 활동으로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84년 이후 발병이 보고되지 않았고 2000년 한국이 속한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도 소아마비 퇴치를 공인받았다. 현재 소아마비가 풍토병으로 남아 있는 나라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두 곳뿐이다. 한국인에게 소아마비란 멀고도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아직도 소아마비 퇴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지난해,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의 하수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미국과 영국이 소아마비 퇴치를 공인받은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 나라에서 소아마비 위협이 다시 불거진 것은 바이러스에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글로벌 연결 시대에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세계 모든 곳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되고 국경이 열린 지금, 한국도 그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는 2009년 30여 명의 로터리 봉사단을 이끌고 인도 북부 미럿에서 아동 수백 명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투여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 인도는 한 해 741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으나 2011년에는 단 1명으로 줄었고, 2014년에는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소아마비 퇴치를 공인받았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감격했다. 소아마비가 우리 노력으로 퇴치 가능하며, 소아마비 없는 세상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지구를 소아마비 없는 곳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소아마비의 위험성을 알리고, 예방접종을 지지하며, 오지를 가가호호 다니며 영유아들에게 백신을 투여하는 보건요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며칠 전 세계 소아마비의 날(10월 24일)을 맞아 새삼 큰 다짐과 의지를 다져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아마비 퇴치에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각자의 작은 기여가 모여 큰 역사를 만들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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