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동부 한 지방대학에 거처하고 있다. 교정에서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를 마주쳤다. 그는 "요즘 바빠서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나의 옛날 한국인 제자를 통해서 가끔씩 소식을 전해 듣고 있긴 하다"라고 했다. "그 한국인 제자 이름이 뭔가요?" 했더니 그는 "반.기.문"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잠시 동안의 대화였지만 그는 한국의 외교 현안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은 △△이다'라는 식으로 핵심 사항을 한 줄로 정리해 둔 듯한 화술법이 인상 깊었다. 한국인 제자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한국 외교 내막에 대해 한 수 배운 쪽은 오히려 필자였다. 4월엔 이 대학에 한국 대통령이 와서 연설도 했다.
이런 식으로 놀란 적이 또 한 번 있다. 뉴욕에 회의하러 가서 만난 한 미국인의 한국에 대한 식견도 대단했다. 그는 대개의 외국인들은 잘 모르는 한국 국내정치의 권력지형을 꿰뚫고 있었다. 필자의 눈이 놀라서 동그래졌다. 그는 가끔씩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업데이트'를 한다고 한다. 그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전직 장관 이름이 나온다. 속으로 '아, 이런 사람들은 고급 정보를 신문 보지 않고 이렇게 '직통'으로 받는구나' 생각했다.
필자의 제한된 경험이 이렇다면, 미국 정부·학계에서 한국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두뇌집단은 아마도 한국 정세를 매우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식견은 조금 다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우연히 왔다.
미 정부 내 한반도 분석관들과 소장파 학자들이 혼합된 비공개 워크숍에 참석하게 되었다. 거의 모두가 한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그들의 발표를 듣고 코멘트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예상치 못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현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한국 대통령이 '친미파'이면 미국인들은 당연히 현 정부를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였는데, 그 기대치가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 와서 '자유민주주의'를 자주 강조하는데 막상 한국에서는 권위적으로 행동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행세'(democracy posturing)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정말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대통령이 나설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본다."
다른 발표자는 윤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소통·협의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커피 휴식 시간에 그에게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서둘러 개선한 것이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한 것이고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언급하며 "미국이 원하는 것은 정책의 지속성이다"라고 했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한국 대통령에게 반색을 하고 호감을 표시하는 워싱턴 정치인과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워싱턴 싱크탱크 인사들의 칭찬 일색의 발언과는 결이 달라서 인상에 남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한국 정치에 대한 일반적 의견이나 대중적 인식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을 밀접하게 연구·분석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미묘하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관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견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