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 개발사의 올해 신작 VR게임
'다크스워드' '시에라 스쿼드' '이스케이프 룸 온라인'
VR만의 경험에 게임의 즐거움 선사
'메타 퀘스트3' 등 새 VR기기 성능도 향상
현재 일반 소비자들이 개인용 가상현실(VR) 기기를 쓴다면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을 하기 위함이다. VR 기기를 쓰면 게이머의 시선 기준 360도가 모두 게임의 무대가 된다. 그 어떤 모니터와 TV로도 줄 수 없는 몰입감과 공간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차세대 게임 플랫폼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한때 '메타버스'의 핵심 구현 요소 중 하나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곧 불만을 토로한다. 기기가 무겁고 VR 영상의 품질이 떨어지다보니 어지럽다. 헤드셋을 쓰면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어 불안감과 갑갑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를 비롯해 무수한 메타버스 서비스가 큰 반향을 얻지 못했고 실적도 부진하다. 게임전용기기(콘솔) 시장의 규모가 작은 한국에선 특히 VR 게임의 인기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한국 게임사들은 북미를 중심으로 조금씩 커지는 시장을 공략하고 데이터를 모으는 차원에서 꾸준히 게임을 내놓고 있다. 각각 다른 종류의 게임들이 양 손의 컨트롤러와 헤드셋을 낀 머리를 움직이게 하면서 구체적이고 세세한 동작을 요구했다. '신기한 체험'의 영역을 넘어서서 실제로 꾸준히 즐길 만한 잘 만들어진 게임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공격 피하려 앉았다 일어섰다 반복했더니
지난달 27일 컴투스 자회사인 VR게임 제작사 컴투스로카의 도움으로 이 회사가 제작한 신작 게임 '다크스워드: 배틀 이터니티'를 체험해 봤다. 게임 속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쏟아지는 몬스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정신 없이 손을 흔들었다. 날아다니는 적이 날리는 화염구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숙이거나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되풀이하자 땀이 흘렀다.
뒤편을 잡는 적에게 두들겨 맞기를 여러 번, 입고 있던 택트수트(진동 모터가 장착된 옷)가 심장 쪽을 흔들며 체력 부족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평소 일반 게임에서 내가 조종하던 모니터 속 캐릭터가 이런 고생을 하고 있었구나' 하며 웃었다. VR 기기를 착용하면 느낄 수 있다던 어지러움 같은 건 거의 없었다.
다크스워드는 전형적 중세 배경 롤플레잉 게임(RPG)의 설정을 가져왔지만 VR 게임인 만큼 게이머 스스로 전투를 해야 한다. 근접전에선 오른손으로는 칼을, 왼손으로는 방패를 들고 싸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을 상대로는 활을 꺼내 공격할 수 있는데 실제로 왼손으로 조준하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당겨야 한다.
게임이 3차원 공간에서 벌어지는 만큼 바닥 공격을 피하고 적의 뒤를 잡는 등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던전의 최종 층계로 올라갔을 때 벌어지는 보스전에서는 특히 뒤쪽의 약점을 노리는 플레이가 중요했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고 얻은 아이템으로 무기를 강화할 수 있는데 여기에도 VR을 응용했다. 강화하려면 메인 메뉴에서 대장간 코너를 찾아가 무기를 직접 망치로 두드려야 한다.
신현승 컴투스로카 대표는 "기존의 게임들이 물리 엔진을 뽐내는 '가상 현실의 체험판'에 가깝다면 다크스워드는 게임성과 액션에 좀 더 무게를 뒀다"고 소개했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신 대표는 "잠재력이 있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VR 영역에서 비슷한 RPG 게임의 유행을 촉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택트수트' 착용하니... 맞은 부위의 진동 모터만 움직여
7일에는 햅틱 솔루션 개발사 비햅틱스의 도움으로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시에라 스쿼드'를 체험했다. 인기 1인칭 슈팅(FPS)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VR 무대로 옮긴 이 게임 속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총기와 수류탄을 들고 싸울 수 있었다.
이 게임의 강점은 세밀한 행동을 요구하는 데서 오는 현실감에 있다. 예를 들어 주로 사용하는 한 손으로 기관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길 수는 있지만 반동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 제대로 적을 조준하려면 왼손까지 들어서 가상의 총을 받쳐 들어야 한다. 수류탄을 던지려면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들고 왼손으로 안전핀을 뽑은 다음 실제 폭탄을 던지듯이 팔을 휘둘러 던져야 한다. 시에라 스쿼드를 비햅틱스의 도움으로 체험했던 것은 이 게임이 비햅틱스의 햅틱1 솔루션과 가장 잘 연동된 게임 중 하나라서다.
조끼와 손목토시 등으로 구성된 택트수트를 착용한 채 게임을 진행해 보니 총격을 받을 때 해당 부위의 진동 모터만 움직이며 충격이 들어왔다. 적의 공격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될 듯했다. 수류탄과 로켓 공격 같은 경우는 충격이 더 크게 왔다. 여러 차례 맞고 나니 절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비햅틱스 관계자는 "9월 도쿄게임쇼에서 크로스파이어와 함께 제품을 시연했는데 인기가 꽤 좋았다"고 말했다.
앞서 2일에는 스코넥엔터테인먼트가 올해 출시한 방탈출 게임 '이스케이프룸 온라인'을 체험해 봤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인형의 방' 안에서 제한된 시간 40분 동안 퍼즐을 풀어 탈출하는 게임이었다. 방 안에 있는 그림에 맞춰 인형의 부품을 찾아 완성하면 다음 퍼즐에 쓸 아이템이나 잠금장치를 풀 열쇠가 나왔다.
하지만 점프스케어2와 간간이 들리는 유령의 속삭임이 게임 진행을 방해하면서 오프라인의 방 탈출로는 경험하기 힘든 긴장감을 전달했다. 퍼즐이 비교적 직관적인 편임에도 불구하고 15분 동안 간신히 열쇠 하나를 얻어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본래 오프라인의 아케이드 게임장에 VR 체험 기기를 공급하는 데 힘써 왔지만 최근에는 개인용 VR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게임을 적극 이식하고 있다. VR기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메타와 협력해 새 VR FPS '스트라이크 러시'를 2024년 초에 출시할 예정이다. 다른 게임사도 VR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데브시스터즈는 인기 모바일 게임인 '쿠키런' 프랜차이즈를 활용한 VR 액션 어드벤처 게임 '쿠키런: 더 다키스트 나이트'의 12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메타가 이끈 XR 기기 시장, 애플·삼성 등장에 기대감 상승
VR 게임 시장이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 이유로 흔히 기기의 불편과 콘텐츠의 부족을 꼽는다. 두 요인은 사실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콘텐츠가 충분하지 않기에 VR 기기를 사야겠다 싶은 이유가 없었고 VR 기기가 없기에 더 콘텐츠를 접하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기기 제조사는 각기 '스토어'를 운영하며 게임을 적극 알리고 있고 게임사들도 최대한 많은 기기에 게임을 내보내려고 노력한다.
게임 업계는 특히 차세대 제품의 성능이 좋아졌다는 점에 고무돼 있다. VR 기기 시장의 70%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메타는 10월 3년 만에 '메타 퀘스트3'를 출시했다. 전작인 '메타 퀘스트2' 대비 부피가 40% 줄어들어 기기 사용에 부담을 최소화했고 성능은 두 배 좋아졌다. 화면의 해상도가 올라가면서 멀미나 어지럼증을 불어올 소지가 크게 줄었다.
'패스 스루3' 기능이 강화된 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자동으로 주변 공간을 스캔해 벽면과 지형지물을 분석하는 '공간 캘리브레이션' 능력도 크게 좋아졌다.
이 덕에 현실 공간과 가상공간을 결합하는 혼합현실(MR) 콘텐츠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메타 퀘스트3에 기본적으로 포함된 '퍼스트 인카운터'를 직접 해보면 기기가 현실의 벽면과 개체를 인식해 우주선과 다양한 색이 들어간 원형의 '외계 생물'들이 벽을 뚫고 침입해 들어오는 장면이 연출된다. 게이머 또한 총을 들고 벽을 직접 부숴 외계 생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의 이승종 콘텐츠 개발이사는 "메타 퀘스트2까지만 해도 VR기기는 착용하면 답답하고 두렵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3는 분명 다르다"며 "게임 말고도 패션이나 스포츠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MR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소니 또한 올해 초 'PSVR'의 2세대 제품인 'PSVR 2'를 출시하며 시장을 확대했다. 다만 소니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5의 주변 기기 성격이라 본체가 필요하다는 약점이 있다. 이 밖에 중국 피코와 대만 HTC, '스팀'을 운영하는 미국의 밸브 등이 각각 제품을 내고 있다.
애플과 삼성 등 주요 전자기기 개발사들이 확장현실(XR) 기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희소식이다. 애플은 7월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비전 프로'를 공개하고 내년 중 발매를 예고했다. 비전 프로 자체는 VR보다는 증강현실(AR) 기기의 성격이 강하고 초고가 제품이라 대중화에 큰 힘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XR 시장의 주목도를 높인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부른다. 삼성전자도 올해 초 퀄컴·구글과 함께 XR 기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알렸다.
- 1 햅틱
- VR의 내용을 실제 촉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 2 점프스케어
- 유령 등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장면
- 3 패스 스루
- VR 기기를 착용하더라도 VR 화면에서 벗어나 주변의 실제 환경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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