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 짝을 이뤄 진행하는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은 ‘룸살롱 문화’를 그대로 이식한 것이란 분석이 회자된 게 2004년이었다. 방송계 종사자들은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여성을 젊음과 외모로만 소비하는 ‘룸살롱 문화’가 아니라면 경험과 능력을 갖춘 중년의 여성 기자를 ‘간판 앵커’에서 아예 배제하는 이유를 딱히 찾을 수 없긴 하다.
□ 2018년 조사 결과를 보면 주요 뉴스 프로그램의 남녀 앵커 나이는 최대 33세까지 차이가 났다. 12세 차이는 적은 편이었다. 그해 국회에서 열린 양승동 KBS 사장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남녀 앵커 나이 차가 평균 열일곱 살”이라며 “젊고 아름다운 여성만 앵커를 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남성 앵커는 중요한 뉴스를 전하고, 여성 앵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뉴스를 전하는 포맷도 지적했다.
□ 2019년 40대의 이소정 기자가 KBS ‘뉴스 9’의 메인 앵커로 발탁된 건 이런 사회적 문제제기가 누적된 결과였다. 다른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일부 변화가 있었으나, 지상파 방송3사의 간판앵커 자리는 이소정 앵커를 제외하면 여성에겐 지독히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민 KBS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소정 앵커조차 지난 10일을 끝으로 중년 남성 앵커로 교체됐다. 뛰어난 뉴스 전달력과 안정성을 갖췄다는 좋은 평가를 받은 그이지만, 갑작스러운 교체로 4년간 만난 시청자들에게 작별인사 한마디 할 수 없었다.
□ 이소정 앵커는 발탁 초기 인터뷰에서 “(앵커 맡고) 처음 열흘간은 밥도 안 들어갔다”며 “실수한 것, 아쉬운 것이 자꾸 생각나서 새벽 2시쯤 잔다”고 했다. 여자 후배들의 응원을 받았다는 그는 그 후배들의 길을 터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여성’이 아무리 능력을 보여줘도, 그 자리는 다시 남성에게 돌아가곤 한다. ‘구조적 성차별’의 뿌리가 그만큼 단단하다는 뜻이겠다. 작별인사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가 무슨 말을 했을지, 못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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