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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유명 재미동포 배우 스티븐 연과 존 조가 한국을 찾았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서였다. 부산영화제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모신 진객들이었다. 이들은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행사로 초청됐다. 스티븐 연과 존 조는 방한을 기뻐했으나 행보는 조심스러웠다. 스티븐 연은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드라마 ‘성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아예 피했다. 그의 침묵은 미국배우조합(SAG-AFTRA) 파업 때문이었다. 배우가 신작 영화나 드라마 홍보를 하게 되면 파업 효과가 떨어져서다.
□ 지난 7월 시작된 미국배우조합 파업이 8일 종료됐다. 미국배우조합과 영화·TV 제작자연맹(AMPTP)이 잠정 합의에 이르러서다. 할리우드는 미국작가조합(WGA·5월부터 파업, 9월 종료)과 미국배우조합 파업으로 올스톱 상태였다. 미국배우조합은 파업으로 유례없는 승리를 거뒀다는 평이 나온다. 배우들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부터도 ‘재상영 분배금’을 받게 됐다. 최저출연료는 40년 만에 최대치로 올랐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용에 대한 새 규칙을 마련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 8일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따르면 미국배우조합은 이번 합의로 10억 달러 상당의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 배우들이 118일 동안 생업을 자진 포기해서 얻은 성과라 더 눈부시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마고 로비, 메릴 스트리프, 제니퍼 로런스, 맷 데이먼 등 유명 배우들이 파업에 동참하며 힘을 보탰다. 배우 니콜 키드먼과 조지 클루니, 드웨인 존슨 등은 파업으로 생계가 위태로워진 무명 배우들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 빛의 밝기가 각기 다른 할리우드 별들이 파업이라는 대의 앞에서 똘똘 뭉친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다. 한국영화배우조합이 지난해 8월 창립해 활동에 들어갔으나 아직은 유명무실하다. 국내 영상업계에는 이러저러한 직능단체들이 있으나 파업으로 자신들 요구를 관철할 정도는 못 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유난히 심한 연기 분야에서 동료를 돕기 위해 톱스타가 돈을 내놓는 경우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 배우들도 각자도생 아닌 공동체를 생각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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